미국의 원유 재고가 예상보다 크게 늘었음에도 유가가 뛰었다. 러시아에 가하고 있는 서방의 에너지 제재가 강화될 수 있다는 소식과 중국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유가를 끌어올렸다.

11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2월물)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2.29달러(3.05%) 오른 배럴당 77.4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WTI는 이날까지 5거래일 연속 올랐다. 5거래일 연속 상승은 지난해 10월 이후 처음이다. 이 기간 동안 유가는 6.27%나 상승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미국 재무부가 러시아산 에너지 자원에 대한 추가 제재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EU를 포함한 주요 7개국(G7), 호주 등 27개국은 지난달부터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가격 상한제를 실시하고 있다. 천연가스는 다음달 15일부터 1년간 가격상한제가 적용된다. WSJ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은 다음달 5일부터 원유와 가스 외에 디젤, 중유 등 정제 제품에도 가격 상한을 두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12일 기준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2월물) 가격 추이. 자료=오일프라이스닷컴
12일 기준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2월물) 가격 추이. 자료=오일프라이스닷컴
서방의 가격 상한제로 인해 러시아의 주력 원유 상품인 우랄유는 시장에서 서방이 정한 가격 상한인 배럴당 60달러 이하로 거래되고 있다. 서방은 러시아산 원유가 60달러를 넘어서는 가격으로 거래되는 경우 해운·보험사들이 러시아산 원유 화물을 취급하는 것을 막고 있다.

WSJ은 “디젤 등 정제 제품에 대한 제재가 원유에 대한 제재보다 러시아 경제에 입힐 타격이 더 크다”며 “유럽 시장에 대한 접근이 불가능해지고 다른 지역으로의 선적에 대한 서방의 제재도 가해지면 러시아가 정유 생산량을 줄이면서 세계 공급량도 따라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러시아는 서방의 원유 가격 상한제가 별다른 압박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11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일일 브리핑에서 “손실에 관한 아직 아무도 상한선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다음달 1일부터 이 유가 상한제를 준수하는 국가에 원유·석유 제품 공급을 5개월 간 금지하는 법령에 지난달 서명한 상태다.

중국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도 유가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중국 산업정보기술부는 코로나19 유행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중국 산업 생산량이 전년보다 3.6% 성장한 것으로 추정했다. 랄프 브란드스태터 폭스바겐 중국 사업부 사장이 이날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체 승용차 판매가 올해 5%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한 점도 경기 회복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키웠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에너지정보업체 오안다의 에드워드 모야 선임 시장 애널리스트는 “에너지 거래자들은 유가 상승을 보는 데 익숙해져야 할 것”이라며 “석유 수요가 다시 돌아오고 있으며 중국의 수요가 급증할 것이란 기대가 크다”고 지적했다.

가격상한제 이슈보다는 시장 파급력이 약했지만 미국의 원유 재고 증가 소식도 나왔다. 이날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주 미국의 원유 재고량은 4억3960만배럴로 전주 대비 1896만1000배럴 늘었다. 주간 증가량으로는 1982년 기록 집계 이후 세 번째로 많은 증가량이다. EIA 발표 하루 전 미국석유협회가 지난주 미국의 원유재고가 1487만배럴 증가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 예상치를 뛰어넘는 재고가 쌓였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