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간토대학살 100년…조선인 6천명의 '잊힌' 억울한 죽음
"간토대지진의 사망·행방불명자는 10만5천 명 이상이며 이 중 1%에서 수%가 피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학살이라는 표현이 타당한 예가 많았다.

대상이 됐던 것은 조선인이 가장 많았다.

중국인, 내지인(일본인)도 수는 적었지만 살해됐다"
일본 정부 내 전문가 집단인 '재해교훈의 계승에 관한 전문조사회'가 2009년 정리한 보고서에는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대해 이같이 적고 있다.

1923년 9월 1일 도쿄 등 간토 지방에서 일어난 규모 7.9의 간토대지진이 발생한 지 올해로 100년을 맞는다.

대규모 자연재해로 도쿄 등지에서 살던 수많은 재일 조선인이 숨졌다.

그런데 지진에 이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방화한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유포되면서 조선인들이 자경단, 경찰, 군인에게 학살당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독립신문은 당시 조선인 학살 희생자가 6천661명이라고 보도했다.

사회적 약자인 식민지 국민 조선인이 무차별 살해된 간토대학살은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하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확한 희생자 숫자뿐 아니라 학살을 주도한 가해자 등에 대한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다.

일본군 위안부와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 문제 등과 비교해도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는 일본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진 후 일본 내무성은 전국 지자체에 '조선인 폭동'을 사실화하는 유언비어를 타전했고, 사이타마현 경찰서는 불령선인(不逞鮮人·불온한 조선인)의 망동이 있으므로 급히 상당한 조처를 해야 한다고 전국으로 전파했다.

이로 인해 도쿄와 요코하마, 지바, 사이타마, 군마 등 각지에서 치안 당국뿐만 아니라 일본인 자경단에 의한 조선인 학살이 벌어졌다.

[특파원 시선] 간토대학살 100년…조선인 6천명의 '잊힌' 억울한 죽음
일본 정부는 조선인 학살이 정부와 관계없다며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일본 사회에서도 역사 수정주의가 퍼져가면서 '학살은 없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17년 5월 각의(국무회의)에서 간토대지진 후 일어난 조선인 학살사건과 관련해 '유감의 뜻 표명'을 할 계획이 없다는 답변서를 확정했다.

일본 정부가 이 사건에 관여했다는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정부 내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우익 성향을 보여온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는 매년 9월 1일 도쿄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공원에 있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앞에서 열리는 추도식에 2017년부터 추도문을 보내지 않고 있다.

이노세 나오키, 마스조에 요이치와 '극우'로 불린 이시하라 신타로 등 전임 도쿄지사들이 재임 중 추도문을 보낸 것과 달라진 모습이다.

고이케 지사는 도지사로서 도쿄도위령협회가 주최하는 간토대지진 추도 행사에서 "희생된 모든 분을 추모한다"고 표명하고 있기 때문에 조선인을 위한 개별 행사에 따로 추도문을 안 보낸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간토대지진 때 조선인 6천여 명이 학살당했다는 추도비의 내용이 부풀려졌다는 우익 진영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극우단체들은 매년 9월 1일 간토대지진 학살 조선인 추모 행사에서 반대 시위를 벌이며 "6천여 명 학살은 거짓이다.

일본인의 격을 떨어뜨리는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를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파원 시선] 간토대학살 100년…조선인 6천명의 '잊힌' 억울한 죽음
한국에서는 지난달에야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명부에 관한 실태조사 학술연구용역 보고서'를 발간하며 희생자 408명의 이름이 담긴 명부를 확보해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했다.

뒤늦게나마 정부 조사기관이 희생자와 관련해 파악했다는 의의가 있으나 사건의 진상 규명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간토대학살 진상 규명은 비단 억울하게 죽어간 100년 된 조선인 원혼을 위령하는 것뿐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과거 사실을 거짓이라고 부인하는 극우파들이 일본 내에서 집단학살을 정당화한다면 앞으로도 재일교포와 외국인 등 여전히 일본 내에서 약자인 이들을 대상으로 한 증오 범죄가 지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2021년 8월 재일 조선인 집단 거주지인 교토부 우토로 마을에 불을 지른 20대 범인 아리모토 쇼고는 "한국이 싫었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

특정 민족에 대한 혐오감에서 비롯된 범행이라는 점에서 간토대학살과 아리모토의 범죄는 그 뿌리가 같다.

간토대학살 100년을 맞아 진실 규명 움직임이 더욱 가속돼 다시는 일본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증오범죄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특파원 시선] 간토대학살 100년…조선인 6천명의 '잊힌' 억울한 죽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