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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 집중탐구

삼성전자, 3자배정 유증으로 지분 10% 확보
인간형 로봇 개발 기술력 살려 핵심부품 내재화
올해 미국·유럽 공략 본격화…공장 증설 나설 듯
레인보우로보틱스 RB-N 시리즈가 적용된 무인 로봇카페 플랫폼. /사진=한경DB
레인보우로보틱스 RB-N 시리즈가 적용된 무인 로봇카페 플랫폼. /사진=한경DB
삼성전자가 보유한 100조원 남짓의 현금이 이 회사 주가 상승을 가로막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가는 미래의 성장 기대감을 반영하는데,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삼성전자가 충분한 재원을 보유하고도 신성장 동력 투자라는 주가 상승 모멘텀을 만들지 않는 데 대한 주식쟁이들의 불평이었죠. 치솟는 금리에 경기까지 침체돼 가는 현재 시점에서 보면 현금이라는 안전판을 어느 정도 남겨 둔 걸 올바른 선택으로 평가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고 삼성전자가 미래를 위한 투자를 전혀 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삼성전자 주가를 끌어 올릴 정도로 이목을 끌 만한 대규모 투자는 아니지만, 삼성그룹 산하 벤처투자회사인 삼성벤처투자 등을 통해 로봇, 인공지능(AI), 바이오 등 신사업 분야에 대한 투자는 꾸준히 이어온 것으로 알려집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부회장이던 2020년 8월 내놓은 투자 방침에 따른 행보죠.

새해에도 벽두부터 삼성전자의 벤처투자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오늘 이야기할 로봇 벤처기업인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약 590억원을 투자하고, 이 회사 지분 10%가량을 확보하기로 한 겁니다. 삼성전자의 새해 첫 투자 행보이자, 작년 10월27일 취임한 이재용 회장의 첫 번째 투자 결정이었다는 점으로도 이목을 끌었죠.

이슈가 됐으니 주가가 반응해야겠죠. 지난 3일 개장 전에 삼성전자를 대상으로 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 결정을 공시한 레인보우로보틱스는 당일에 장중 상한가를 찍고 상승분을 소폭 반납해 27.45% 상승해 마감했습니다. 이후에도 3거래일 더 상승세를 탔고요. 4거래일동안의 상승폭은 47.85%에 달합니다.
[마켓PRO] '회장' JY의 첫 투자 레인보우로보틱스…제2의 '삼바' 될까

글로벌 3대 인간형 로봇으로 꼽혀…재난 대응 대회서 1위

국내 증시에도 로봇 테마주들은 많습니다. 그중 삼성전자가 코스닥 시장에 입성한지 3년차밖에 안 된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콕 집도록 만든 경쟁력이 있을 겁니다.

우선 프로필이 화려합니다. 몸통에 팔·다리와 머리가 붙어 있는 인간형 로봇 ‘휴보’를 국내 최초로 개발했죠. 휴보는 일본 혼다가 개발한 ‘아시모’, 현대차그룹 산하의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개발한 ‘아틀라스’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인간형 로봇 모델로 꼽히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2015년 주최한 세계재난로봇경진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면서 휴보에 전 세계 로봇산업계의 관심이 집중됩니다. 레인보우로보틱스 관계자는 “DARPA 재난로봇경진대회는 재난현장에서 로봇이 사람을 대신해 구호활동을 비롯한 미션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하는지를 겨루는 대회”라며 “대회가 시작된 뒤에는 사람이 로봇에 명령을 내릴 수 없어, 사전에 고지되지 않은 돌발상황까지 로봇 스스로 인지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레인보우로보틱스가 개발한 인간형 로봇 '휴보'. /사진=레인보우로보틱스
레인보우로보틱스가 개발한 인간형 로봇 '휴보'. /사진=레인보우로보틱스
회사의 태생도 눈길을 끕니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내 로봇 연구센터인 ‘휴보랩’에서 2011년 분사해 설립됐습니다.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이자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 소장인 오준호 교수가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고 있죠. 오준호 교수의 제자였던 이정호 최고경영자(CEO), 허정우·임정수 기술이사, 배효인·정효빈 수석연구원 등 수뇌부가 대부분 카이스트 출신입니다.

물론 삼성전자가 수뇌부의 학벌이나 인간형 로봇모델 휴보만 보고 레인보우로보틱스에 투자한 건 아닐 겁니다. 학벌이 꼭 실력을 담보해주는 것도 아니고, 인간형 로봇을 만들려면 가장 높은 수준의 기술력이 필요하지만 현재로선 상용화까진 갈 길이 머니까요. 보기에 따라 ‘치장’에 불과할 수 있는 학벌과 인간형 로봇을 먼저 이야기한 건 레인보우로보틱스 주식에 투자할 때 봐야 할 ‘알맹이’와 따로 떼 놓고 보기 힘들어서입니다.

핵심부품 내재화로 경쟁사 대비 30% 저렴한 가격

국내 최고의 과학 연구기관에서 가장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인간형 로봇을 국내 최초로 만들었다는 건 ‘제로 베이스’에서 결과물(휴보)을 만들어 내기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수행해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결과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일체형 관절 모듈, 구동기, 엔코더, 브레이크, 제어기, 감속기 등 로봇 하드웨어의 핵심 부품 여섯가지 중 감속기를 제외한 다섯 가지를 직접 개발해 내재화했습니다. 현재 자체적인 감속기도 개발 중으로, 로봇 핵심부품 전체를 내재화할 계획입니다. 또 로봇의 동작을 실시간으로 제어하는 소프트웨어도 직접 만들었죠.

핵심부품을 직접 개발했다는 건 원가 절감으로 이어집니다. 김두현 하나증권 연구원은 “로봇의 핵심부품인 감속기, 구동기, 엔코더, 브레이크, 제어기는 전체 원가의 60% 이상을 차지한다”며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원가율을 50% 수준으로 절감해 저렴한 판매 가격을 형성했다. 협동로봇 기본 모델의 가격은 경쟁사 대비 약 30% 낮은 2000만원 수준”이라고 말했습니다.

갑자기 ‘협동로봇’이라는 말이 나와버렸군요. 협동로봇은 인간형 로봇의 팔만 떼어 내 사람 대신 일을 시킨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대규모 공장에서 사용되는 전통적인 산업용 로봇과 비교하면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협동로봇은 사람을 인식해 작업 중에 사람이 끼어들면 동작을 멈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협동로봇만 해도 사용처가 무궁무진합니다. 최근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 로봇과 치킨을 튀기는 로봇이 이슈가 되기도 했잖아요. 특히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치킨 로봇에 대해 미국 위생협회의 식품서비스기기(NSF/ANSI2) 인증을 받은 유일한 로봇회사라고도 하더군요.
사진은 기사와 무관. /사진=뉴스1
사진은 기사와 무관. /사진=뉴스1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기 3년 전인 2018년부터 협동로봇 개발에 나서섰습니다. 주식 시장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수익 모델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기술수준이 더 높은 인간형 로봇을 만든 경험이 있었기에 협동로봇 분야에 발을 들인지 16개월만에 제품 개발에 나서 2021년부터 제품을 판매했고, 이후 1년도 지나기 전인 작년 1분기부터 영업이익을 남기기 시작해 같은해 3분기까지 누적으로 11억8000만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올해부터는 미국과 유럽의 협동로봇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할 계획이라 실적 성장이 본격화가 기대됩니다. 이를 위해 공장 증설에도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요.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이번 삼성전자를 대상으로 한 유상증자 대금 590억원 중 290억원을 시설자금으로 사용하겠다고 공시했고, 이에 앞서 작년에는 세종시 인근에 공장부지를 확보해두기도 했습니다.

양승윤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삼성전자 대상 유상증자 공시에 대해 “이번 투자로 레인보우로보틱스 협동로봇의 삼성전자 라인 공급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삼성전자 공급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현재 레인보우로보틱스가 추진 중인 해외 진출과 과련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인지도 상승 등 영업활동에 긍정적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협동로봇 이외에도 4족 보행 로봇, 의료용 로봇, 마이크로 풀필먼트 시스템(이동로봇) 등 다양한 신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작년에는 현대로템과 군용 다족보행 로봇 개발 사업에 협력하기로 하는 계약을 맺기도 했죠.

침체기에 급등한 성장주…“삼성 투자 효과는 긴 호흡으로 봐야”

다만 기자에게 ‘지금 당장 레인보우로보틱스 주식을 살 거냐’고 묻는다면 선뜻 “사겠다”는 답하기는 어렵겠습니다. 단기간에 주가가 너무 급등했기 때문이죠.

특히 삼성전자 대상 유상증자를 공시한지 이틀 뒤인 5일과 6일에도 상승세를 유지했지만, 차트를 보면 장중 상승분의 절반 이상을 반납해 ‘윗꼬리’를 단 양봉(종가가 시초가보다 높다는 뜻)이었습니다. 기술적으로 긴 윗꼬리를 단 양봉은 주가의 상승 동력이 소진돼가는 상황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주가 급등의 동력인 삼성전자의 투자가 당장 성장으로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양승윤 연구원도 삼성전자의 투자 효과에 대해 “가시적인 실적 기여는 긴 호흡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에둘러 주의하라는 취지의 멘트를 남겼습니다.

중장기적으로는 거시경제(매크로) 환경이 악재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지난 6일 종가 기준으로 12개월 포워드 PER이 200배를 훌쩍 뛰어넘는데, 이런 성장주는 금리 상승에 취약하죠. 금리가 오르면 기업들은 설비 투자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데, 레인보우로보틱스의 표적 시장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겁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