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동원령 넘는 수준…사회 전체를 전쟁에 끌어들이려는 도박수"
러, 아군몰살 신속확인…"푸틴, 자만·가식 버리고 장기전 숙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전에서 자국군의 중대 피해를 신속히 확인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현실 인식과 대응의 급변에 따른 조치로, 사회 전체를 전쟁에 동원하려는 포석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인 도네츠크주에 있는 막사가 공격받아 자국군 63명이 폭사했다고 2일 (현지시간) 밝혔다.

이는 우크라이나의 발표보다 빨리 이뤄진 것으로 그간 사례를 볼 때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러시아는 올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자국군 피해를 축소·은폐하는 데 주력했다.

우크라이나가 전과를 과장하고 서방 글로벌 매체들이 이를 퍼나르면 나중에 의미가 현격히 작은 방식으로 경위를 설명하는 게 그간 패턴이었다.

대표적 사례는 작년 8월 흑해함대 기함인 모스크바호가 우크라이나 미사일에 격침된 사건이었다.

러시아는 배에 불이 난 사고였다고 주장했다.

해군병사 1명이 죽고 27명이 실종됐다는 발표를 지금까지도 고수해 유족들의 심한 반발을 샀다.

이번에 러시아 국방부는 달랐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이 공격에 쓰였다고 밝혔다.

심지어 자국군 사망자가 82명까지 늘어났다고 3일 피해를 실시간 형식으로 갱신하기도 했다.

러, 아군몰살 신속확인…"푸틴, 자만·가식 버리고 장기전 숙고?"
러시아가 갑자기 상대적으로 투명해진 까닭을 두고 서방 매체와 안보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의 인식 변화를 거론했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결국 점령하게 될 것이라는 자만을 버리고 장기전 대책을 숙고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전쟁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애써온 러시아 사회를 전쟁에 끌어들이는 게 그 장기전 대책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푸틴 대통령이 전쟁에도 일상은 계속될 것이라는 가식을 버렸다"며 "이는 크렘린궁이 대규모 사상 사태를 재빨리 시인했다는 점에서 명백하게 잘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애초 우크라이나 북부에 있는 수도 키이우를 며칠 만에 장악할 것으로 오판하고 침공을 강행했다가 동부로 철수했다.

사상자가 10만명에 이르는 소모전이 지속되자 러시아는 작년 9월 부분 동원령을 내려 전장에 보낼 예비군 30만명을 끌어모았다.

NYT는 푸틴 대통령의 인식 변화가 부분 동원령 수준을 넘는 수준이라며 사회 전체를 전쟁에 끌어들이려는 도박수를 두고 있다고 관측했다.

그런 조짐은 역시 이례적이라고 평가를 받은 푸틴 대통령의 신년연설에서도 관측된다는 평가가 많다.

푸틴 대통령의 신년연설은 정치와 관계없는 사안이 주를 이뤘지만 올해는 역대 최장인 9분에 걸쳐 우크라이나전을 얘기했다.

그는 "서방이 평화에 대해 거짓말을 하며 침공을 준비한다"며 "서방은 러시아를 약해지고 분열되도록 하려고 우크라이나를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러시아인 전체가 서방의 침략에 맞서 투쟁에 동참해야 한다는 대국민 메시지로 읽히는 면이 있다.

러, 아군몰살 신속확인…"푸틴, 자만·가식 버리고 장기전 숙고?"
러시아의 독립 정치분석기관인 R.폴리틱의 푸틴 전문가인 타티아나 스타노바야는 "푸틴 대통령에게 명백한 걱정,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가능한 모든 힘을 사용하려는 욕망이 감지된다"고 NYT에 해설했다.

푸틴 대통령의 대국민 신년연설 호소에서 보듯 사회 총동원의 주된 변수는 러시아 민심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 내에서 군의 부진에 대한 싸늘한 시선은 현재로서는 푸틴 대통령이 아닌 현장 지휘관들에게 제한되고 있다.

당국의 철저한 검열 속에 언론에서는 푸틴 대통령을 겨냥한 직접 비판은 전무하다.

소셜미디어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우크라이나전쟁을 평가하는 친정권 국수주의 논객들도 책임을 현지 지휘관에게 묻고 있다.

지금은 전쟁에 대한 대중의 광범위한 사회적 불만이 관측되지 않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러시아 정치학자인 미하일 비노그라도프는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도 반발이 전쟁 첫해에 당장 불거진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주목했다.

그는 NYT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에 대한 러시아 내 비판이 없다는 데 대해 "정치체계가 아주 절대적으로 안정적인 게 아니라면 좌절감이 서서히 누적돼 어느 날 강력하게 폭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