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아시안게임 직전 김포공항 폭탄테러…"언제나 어디서나" 초긴장
공항 방치 물품 등에 연간 많게는 400차례 이상 출동

[※ 편집자 주 = '공항'은 여행에 대한 설렘과 기대로 충만한 공간입니다.

그중에서도 제주공항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 의미가 각별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지나 엔데믹(endemic·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으로 이어지는 이 시대에도 '쉼'과 '재충전'을 위해 누구나 찾고 싶어하는 제주의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연간 약 3천만 명이 이용하는 제주공항. 그곳에는 공항 이용객들의 안전과 만족, 행복을 위해 제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비록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며 제주공항을 움직이는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 이야기와 공항 이야기를 2주에 한 차례씩 연재합니다.

]
[제주공항 사람들] ⑨"사명감 없으면 일 못해"…사선 넘나드는 폭발물처리반
전 세계의 공항은 격변하는 국제정세 속에 오래전부터 테러 위험에 노출돼왔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테러 안전지대라고 여기곤 하지만, 간혹 언론을 통해 접하는 세계 각국의 테러 소식을 접할 때마다 사람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폭발물 테러 위험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제주공항 폭발물처리반 대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테러의 위협…긴장하는 공항
86아시안게임을 불과 6일 앞둔 1986년 9월 14일 오후 3시 12분께 김포공항에서 폭발물이 터졌다.

당시 1층 국제선 청사 앞 철제 쓰레기통에서 테러로 추정되는 폭발사고가 발생, 일가족 4명과 공항 직원 1명 등 총 5명이 숨지고 3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당시 군·경 수사진이 현장조사를 통해 밝혀낸 폭발물은 컴포지션폭약 C4였다.

정부는 폭발물을 분석해 북한의 소행으로 추정했으나 뚜렷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사건의 전모는 23년이 지난 2009년에야 드러났다.

옛 동독 정보기관 슈타지(STASI) 비밀보고서에 아랍계 테러리스트 아부 니달이 북한으로부터 500만달러를 받고 김포공항 폭탄테러를 저질렀다고 기록됐다.

김포공항 테러 이후 다행히 우리나라 공항에서 더 이상의 폭탄 테러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

[제주공항 사람들] ⑨"사명감 없으면 일 못해"…사선 넘나드는 폭발물처리반
하지만 위험은 언제 어디서나 도사린다.

테러리스트가 가방·텀블러·신발·휴대전화 등 생필품과 다를 바 없는 모양으로 폭발물을 만들어 공항 등에서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기도 한다.

또 인터넷을 통해 폭발물 제조 방법을 보고 누구라도 손쉽게 사제 폭발물, 급조 폭발물(IED, Improvised Explosive Device)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다.

이러한 탓에 전 세계 공항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한국공항공사가 운영하는 14개 국내 공항과 인천국제공항 등에는 모두 폭발물처리반(EOD, Explosive Ordnance Disposal)이 있다.

제주공항에는 총 7명이 EOD 대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모두 군에서 3년 이상의 폭발물과 생화학 처리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다.

공항과 항공기 내 폭발물, 화학류 등 위험물에 대한 초동조치를 통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문영찬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 보안관리부 폭발물처리반 선임반장은 "재료가 있고, 사용법만 알면 초등학생도 폭발물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C4'의 경우 적은 양으로도 파괴력이 엄청나고, 밀가루 반죽처럼 주물러 다양하게 모양을 만들 수 있다"며 "50g 정도의 양이면 항공기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어 더욱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제주공항 사람들] ⑨"사명감 없으면 일 못해"…사선 넘나드는 폭발물처리반
◇ 연간 많게는 400차례 출동
공항 폭발물처리반이 출동하는 경우는 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공항 내 장시간 방치물품이 발생하는 경우다.

제주공항과 같은 국제공항은 폭발물 테러의 대상이 되는 만큼 일단 30분 이상 주인 없이 공항에 내버려진 여행가방 등 각종 물품은 죄다 폭발물로 여기고 대비 태세를 갖춰야 한다.

신고가 접수되면 폭발물처리반이 현장에 나가 휴대용 X레이 장비를 이용해 폭발물 여부 등을 조사한다.

만약 여행가방 안에 폭발물이 들어있다면, 국가정보원·공항경찰대·항공청·군사안보지원사령부 등 항공보안 관계기관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반의 결정에 따라 신속하게 처리한다.

공항 소속 폭발물처리반은 민간인 신분이기 때문에 일단 초동조치를 한 뒤 경찰 또는 군 폭발물처리반에 인계하지만, 상황이 급박하다면 합동조사반의 결정에 따라 직접 폭발물을 처리할 수도 있다.

또 다른 출동 유형은 갑작스럽게 비행기에서 승객이 내리는 '하기(下機) 승객'이 발생할 경우다.

해당 승객이 비행기 안에 폭발물을 설치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폭발물처리반이 출동해 승객이 앉았던 자리 중심으로 보안검사를 진행한다.

하기 승객의 신원조회 또는 조사 결과, 테러가 의심된다면 전체 승객을 모두 내리게 하고 모든 수화물을 검사하는 등 복잡한 절차도 진행된다.

[제주공항 사람들] ⑨"사명감 없으면 일 못해"…사선 넘나드는 폭발물처리반
이외에도 공항 보안검색 과정에서 폭발물이나 총기류 등 반입금지 물품이 발견되더라도 폭발물처리반이 투입된다.

그렇다면 제주공항 폭발물처리반의 출동 횟수는 얼마나 될까.

1년에 많게는 400차례 넘게 출동할 때도 있지만 평균 200∼300차례 정도다.

공항 폭발물처리 대원들은 "공항에 방치물품이 생기면 국정원과 경찰 등 모든 관련 기관이 소집된다"며 "조사 후 폭발물이 아닌 건 정말 다행한 일이지만 단순 분실물인 경우 많은 인력과 시간이 낭비되는 만큼 공항에서 물건을 방치하지 않도록 주의해달라"고 말한다.

이외에도 폭발물 장난 전화도 간혹 발생한다.

2012년 만우절 제주공항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장난 전화 한 통으로 경찰과 폭발물처리반 등 100여 명이 출동하고 제주행 비행기 7편이 2시간 가까이 지연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제주공항에서는 최근 3년간 2건의 폭파협박 전화가 걸려왔다.

항공기 지연·결항, 항공기 소음 등에 불만을 품고 저지른 장난 전화였다.

이같이 거짓 사실 유포, 폭행, 협박 및 위계로써 공항운영을 방해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출동 대부분이 해프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폭발물처리 업무의 특성상 긴장의 연속이다.

문영찬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 보안관리부 폭발물처리반 선임반장은 폭발물처리 업무를 한마디로 '사명감'이라고 표현했다.

문 선임반장은 "실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내가 잘못되면 가족을 누가 돌봐주나'와 같은 생각이 들 수 있다.

목숨을 걸고 폭발물을 처리해야 하는데 사명감이 없다면 이 업무 자체를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명감이 없다면 중요한 순간에 도망가버리고 만다"며 "15년 넘게 업무를 해오면서 사명감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

일을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항상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지라고 한다"고 말했다.

[제주공항 사람들] ⑨"사명감 없으면 일 못해"…사선 넘나드는 폭발물처리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