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미어샤이머 "美·中 '양극 세계화'로 재편…한국, 安美經中 줄타기 끝내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있는 한 국제 공조는 불가능합니다.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한국은 미국을 택해야 합니다.”

국제정치학계의 석학으로 평가받는 존 미어샤이머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공조 시대는 끝났다고 단언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가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했지만 앞으론 어떤 위기가 온다고 해도 미·중이 협력할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그는 “경제적 번영도 중요하지만 안보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한국은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미국 쪽에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 중국은 중요한 교역국이지만, 중국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미국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한반도 전쟁 가능성도 여전히 높다”며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미·중이 모두 참전할 것”으로 내다봤다.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지난해 말 미국 버지니아의 한 호텔에서 정인설 한국경제신문 워싱턴 특파원과 인터뷰하고 있다.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지난해 말 미국 버지니아의 한 호텔에서 정인설 한국경제신문 워싱턴 특파원과 인터뷰하고 있다.
▷세계화가 갈수록 무색해지고 있습니다.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 시대엔 모든 나라가 효율성 중심으로 세계화에 동참했습니다. 지금은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는 시대입니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세계 각국 간 교류가 끊기는 건 아닙니다. 공급망이나 첨단 기술을 포함해 세계화를 구성하는 요소가 여전히 존재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초(超)세계화’의 시대에서 세계화 시대로 바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위기를 극복하는 데 국제 공조가 가능할까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엔 국제 공조가 가능했습니다.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였다는 얘기입니다. 이 시기엔 미국과 중국이 서로 협조했습니다. 당시엔 중국이 미국에 도전하기에 힘이 너무 약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중국은 미국만큼 강합니다. 이제는 협력보다 경쟁이라는 단어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어떤 위기가 닥친다고 해도 미국과 중국은 협력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가 점점 더 어려운 시기로 가고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유럽도 미국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유럽은 미국이 세계 공장을 싹쓸이한다는 이유로 미국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전쟁도 원인이 됐습니다. 유럽 경제는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충격을 받았고 앞으로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입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이익을 얻었습니다. 많은 유럽인이 이런 비대칭에 대해 분노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미국이 유럽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유럽의 약화가 미국의 목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전쟁은 유럽이 중국과의 경제적 교류를 늘리는 유인을 제공했는데, 이는 미국이 원하는 상황이 아닙니다.”

▷미·중 사이에서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국은 안보 기준으로 미국이 중요하고 경제적으론 중국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이 심한 경쟁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 중 택일할 수밖에 없을 때가 많습니다. 한국이 누구를 택할 것이냐에 대한 답은 명확합니다. 미국입니다. 왜냐하면 안보가 경제적 번영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가장 중요한 건 여러 나라 사이에서 생존하는 것입니다. 안보는 언제나 가장 중요합니다. 경제적 번영은 안보 다음입니다. 한국은 중국과 많은 교역을 해야겠지만 중국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미국과 함께해야 합니다.”

▷미국이 중국에 무역 제재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에 원하는 건 두 가지입니다. 첫째, 중국의 성장을 둔화시키는 데 초점을 둬야 합니다. 미국은 중국의 성장 속도를 깊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막강한 경제력을 언제 군사적으로 전환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둘째, 동맹국들은 중국의 첨단 기술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반도체 수출 통제가 대표적 예입니다. 한국이 중국 첨단 기술 발전에 이용되면 한·미 갈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첨단 기술을 제외한 분야에서 한국이 중국과 교류하는 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반중 정책 때문에 미국과 중국 관계를 과거로 복원하기엔 너무 늦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계로 범위를 확대하면 한국에 여전히 많은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 동맹국들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때문에 힘들어졌습니다.

“IRA는 분명히 미국과 동맹국 간의 관계를 손상시킨 측면이 있습니다. 미국은 IRA와 비슷한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IRA의 잘못된 부분을 개선해야 합니다. 미국이 동맹국들과 공조해 중국과 러시아에 대응하려면 이런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얘기해왔습니다.

“한국은 폴란드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지정학적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두 나라 모두 강대국 틈바구니에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 입장에서 보자면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주요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하려 한다면 북한은 절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과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미국의 안보우산이 한국에서 굳건히 작동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봅니다. 동시에 한국은 미·중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국이 중국에 대해 책임 있게 행동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미·중은 어떻게 할까요.

“1950년처럼 두 나라 모두 한반도 전쟁에 개입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국은 한국의 동맹국입니다. 한국에 수많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며 미국은 한국이 주권을 지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중국 역시 북한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국 입장에서 대만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대만에서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가장 높습니다. 한반도와 남중국해, 동중국해에서도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여전히 큽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계속 개발할까요.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핵무기를 보유하는 게 북한에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북한 입장에서 핵은 필수적입니다. 한·미·일이 할 수 있는 일은 북한의 핵과 함께 사는 법을 터득하는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습니다. 알다시피 한·미·일은 중국에 북한 비핵화를 도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중 간 안보 경쟁이 심화함에 따라 중국이 북핵 제거에 나설 가능성은 더 낮아졌습니다.”

미어샤이머 석좌교수는…강대국 중심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대가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세계 질서를 국가 간 패권 경쟁으로 보는 ‘공격적 현실주의’ 이론을 대표하는 석학이다.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5년간 장교로 근무한 경험이 군사력 중심의 패권을 세계 질서의 원천으로 보는 데 밑바탕이 됐다는 평가다.

현실주의 세계관에 바탕을 둔 그의 예상은 적중할 때가 많았다. 그는 2001년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에서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불가피한 현실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해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할 때도 향후 러시아의 군사행동 가능성을 경고했다. 우크라이나전쟁을 예상했지만 결말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그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세계가 우크라이나전쟁에 깊이 관여하고 있어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종종 미국 행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중국의 부상을 도운 건 다름 아닌 미국 정부라고 지적한 게 대표적 예다. 또 2008년 당시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시키려 한 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계기가 됐다고 주장했다.

△1947년 미국 뉴욕 출생
△1970년 미 육군사관학교 졸업
△1974년 서던캘리포니아대 국제정치학 석사
△1978~1979년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
△1980년 코넬대 국제정치학 박사
△1980~1982년 하버드대 국제문제센터 연구원
△1982년~ 시카고대 교수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