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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인터뷰

“국내 수급 불안한 마당에…‘중국 수출 기대감’이 웬 말”
“감기약 매출 비중 10% 불과…기업가치에 큰 영향 없어”
[마켓PRO]제약사도 불안하다는 '감기약 테마'..."제2의 씨젠? 투자 주의해야"
“아무리 변동성이 크다고 해도 국내 제약·바이오 종목 주가가 실체 없는 추측으로 인해 너무 가볍게 움직이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당장 원료 수급 차질로 국내 공급도 어렵게 이어가는 마당인데, 중국에 감기약을 팔아 코로나19 확산 사태 때의 진단키트 기업들만큼 성장할 수 있을까요?”

최근 위드 코로나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에서 감기약·해열제 품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소식에 주가가 급등락한 한 제약사의 IR담당자 A씨는 “제약업계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투자자들에게 조심하라는 말을 하고 싶다”며 이 같이 말했다.

최근 국내외 의약품 수급 차질 우려가 부상하며 제약사 주가가 크게 들썩였다. 위드 코로나 전환을 추진 중인 중국에서는 감기약이, 유럽에서는 항생제가 각각 부족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관련 제품 매출 증가 기대감이 부푼 것이다.

이에 이달 들어 지난 26일까지 경보제약이 37.20% 급등했고, 한미약품(15.30%), 부광약품(12.56%), 국제약품(18.86%)도 상승률이 10% 이상이었다.

이에 대해 A씨는 감기약 매출이 호조인 건 맞지만, 감기약 매출이 아무리 성장해도 최근의 주가 변동성을 설명할 정도로 제약사의 기업가치에 큰 영향을 주는 건 아니라고 지적한다. 대부분 제약사의 감기약 매출 비중은 전체의 10% 내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매출액 기준 상위 10대 제약사의 경우 연간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제약업계에선 잘 팔리는 의약품 품목에 ‘블록버스터’라는 칭호를 붙이는데, 그 기준이 100억원이다. 약국에서 판매되는 일반의약품 감기약 중 가장 매출 규모가 큰 동아제약의 판피린과 동화약품의 판콜의 올해 연간 매출은 각각 500억원 수준으로 예상되고 있다.

감기약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중국으로의 수출 기대감에 대해서도 A씨는 “현재 공급 계약이 맺어졌다던지, 매출이 늘었다던지 확인된 게 있느냐”고 반문했다. 중국 보따리상(따이공)이 일본과 한국 등에서 감기약을 사들이고 있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다른 회사는 모르겠지만, 나는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국내 제약사의 중국 법인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서도 A씨 “중국 현지 제약사와 비교하면 성장의 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중국 법인을 운영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그는 “만약 감기약 공급이 부족해 설비를 늘려야 할 상황이라면 현지기업들이 한국 기업의 중국법인보다 더 발빠르게 설비를 늘리면서 정부의 지원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중국 수출이 아니라 국내에 공급할 감기약의 원료 수급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고 A씨는 지적한다. 그는 “코로나19 확산 사태로 망가진 공급망이 완전히 복구된 게 아니기에 원료 수급이 원활한 건 아니다”며 “국내 공급도 어렵게 맞추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특히 최근에는 국내에서 판매되는 해열진통제 성분 아세트아미노펜 원료 의약품 91건 중 80%인 73건이 중국으로부터 수입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에서의 감기약 대란 우려도 커지는 중이다. 중국 정부가 자국 내 감기약 수급 차질을 이유로 아세트아미노펜 원료의약품 수출을 중단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이달초 의사의 처방에 따라 조제되는 650mg 용량의 아세트아미노펜 고형제 품목에 대해 약가를 인상해주는 한편, 긴급 생산·수입 명령을 내렸다. 기존 정당 50원대이던 약가를 70원대로 올려주는 대신, 내년 11월까지 월평균 공급량을 50% 이상 늘리라는 게 골자다.

하지만 A씨는 이에 대해서도 “대놓고 반발은 못 하지만, 우리 회사 뿐만 아니라 다른 몇몇 회사들도 ‘별 혜택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매출이 조금이라도 오르긴 할 것”이라면서도 “주가가 움직일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가격 인상이 장기적으로 이익을 성장시켜줄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당초 제약업계는 조제용 아세트아미노펜 공급을 늘리기 위한 약가 인상안으로 650mg짜리 한 정당 150원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수준에서 생산을 더 확대하기 위해서는 야간에도 공장을 가동하기 위한 인력의 추가 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고정비가 늘어나는 셈이다. 하지만 약가는 제약업계 요구의 절반 수준으로 인상됐고, 감기약 대란 사태가 끝나 다시 수요가 줄어들면 제약사들은 확대된 고정비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