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빌런이 된 머스크
‘혁신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테슬라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11월 1조달러를 넘어 1조2127억달러까지 뛰었다. 도요타, 폭스바겐, 현대자동차, 제너럴모터스(GM) 등 나머지 9개 자동차 제조사 시총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액수였다. 그로부터 1년여가 흐른 지금, 시총은 3958억달러로 3분의 1토막이 됐다. 올해 테슬라로 돈을 번 투자자는 공매도 세력뿐이라는 얘기도 있다. 공매도 투자자들은 주가 급락으로 벌써 150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테슬라 주가의 급락 요인으로는 고금리 기조와 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감소, 경쟁 브랜드의 약진 등이 꼽힌다. 하지만 배경에는 테슬라 경쟁력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자리 잡고 있다. 테슬라가 실토한 대로 완전자율주행 기술 구현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그동안 주가를 견인해온 혁신과 기술적 우위도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여기에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의 잇따른 돌출과 기행이 투자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머스크는 만년 적자의 늪에 빠진 트위터를 인수하기 위해 테슬라 주식을 대거 팔았다. 트위터 인수 후 ‘전 세계 이슈를 결집하는 글로벌 플랫폼’을 표방했지만, 기업인에게 금기나 다름없는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내는 등 부적절한 언행을 거듭했다. 투자자들이 트위터에 정신이 팔린 그의 리더십 부재를 문제 삼자 “집에 가서 증권분석 기초 교과서나 읽어보라”고 비꼬았다. 지난 19일에는 자신의 트위터 CEO 사임 여부를 묻는 투표를 갑자기 올린 뒤 절반이 넘는 찬성표가 나오자 “후임을 맡아줄 만큼 어리석은 사람을 찾는 대로 사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급기야 투자자 사이에선 “머스크가 트위터 인수를 위해 테슬라를 ‘ATM 기계’로 이용하고, 트위터로 서커스 쇼를 이어가며 테슬라 브랜드를 위협하고 있다”는 비난이 거세졌다. 한때 영웅으로 추앙받던 그가 빌런(악당)으로 추락했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국내 투자자의 주식 보유액이 약 85억달러(지난 15일 기준)에 이를 정도로 테슬라는 해외 주식 중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소위 ‘머스크 리스크(risk)’에 잠 못 드는 서학개미가 늘고 있다.

유병연 논설위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