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공급망·규제 등 총체 난국에 증산 차질
"우크라전 중단되더라도 필요한 비축량 채우려면 현 속도로 15년"
러시아에 맞선 우크라 지원 절실한데…유럽은 탄약 부족
세계 최대 규모 무기 제조사 상당수가 자리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우크라이나와 스스로를 지키는 데 충분한 탄약을 제조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으며, 이로 인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방어 역량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이 위협받고 있다고 미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2일 보도했다.

유럽 당국자들과 산업계 고위 관계자들은 탄약 생산 능력의 부족, 숙련된 노동자들의 결여, 공급망 병목 현상, 높은 금융비용, 환경 규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탄약 증산 노력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이로 인해 내년에 서방과 우크라이나가 새로운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했다.

21일 미 워싱턴DC를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역시 "러시아군은 대포와 탄약에 있어 상당한 우위를 자치하고 있다.

그들은 훨씬 많은 미사일과 비행기를 갖고 있다"고 말하며 우크라이나가 무기 부족에 처해 있다고 호소한 바 있다.

미국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방미 선물로 첫 패트리엇 방공 미사일을 포함한 우크라이나를 위한 18억5천만달러(약 2조3천억원) 규모의 추가 군사 지원을 발표하긴 했지만, 우크라이나의 군사력은 독일과 같은 유럽 국가들에 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WSJ은 짚었다.

WSJ에 따르면,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군은 하루 포탄 6천발을 쏘는 등 2차 세계대전 이래 유례가 없었던 속도로 탄약을 소비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끊임 없는 폭격 폭에 지대공 미사일도 소진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전투가 한창일 때에는 러시아가 이틀 동안 쏟아부은 탄약만 해도 영국군의 전체 비축량보다 더 많았을 정도였다고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는 밝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써버린 탄약과 포탄을 채우기 위한 속도는 소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독일 국방부 고위 관료 출신의 니코 랑에 뮌헨안보회의 선임연구원은 미국을 제외한 나토의 다른 어떤 회원국도 주요 포격전 수행에 필요한 충분한 무기를 보유하거나, 이를 비축할 역량을 지니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는 나토가 만약 지금 당장 공격을 받으면 적군에 맞서 영토를 방어할 수 없음을 뜻한다면서 "(유럽)각국 정부는 수십 년 동안 계약을 삭감했고, 회사들은 생산 라인과 직원을 감축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세계 최대 군수회사 중 하나인 '남모'(Nammo)의 모르텐 브랜드채크 최고경영자(CEO)는 현재와 같은 탄약과 미사일의 부족은 최근 수십 년 동안 나토 동맹국의 군사 원칙이 변경된 탓이 크다고 진단했다.

나토가 그동안 2차 세계대전 방식의 지상전 계획을 세우는 대신 단순한 적군을 상대로 한 비대칭, 표적 전투에 집중해 왔다는 것이다.

유럽 탄약 생산의 약 30%를 차지하는 체코의 군수업체 체코슬로바크 그룹의 소유주인 미할 슈트르나트는 우크라이나는 매달 나토 규격 155㎜ 대포알 4만 개를 쓰고 있는데, 이 무기의 유럽의 연간 생산량은 30만 개에 불과하다면서 "유럽의 생산능력은 극히 불충분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하루 아침에 중단되더라도 유럽이 현재의 생산 속도로 필요한 비축량을 다시 채우려면 15년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라 별로 살펴도 가령 독일의 경우 러시아의 침공 시 2주 이상 버틸 만한 충분한 탄약을 보유하지 않고 있다고 독일 관리들은 밝혔다.

이는 전투 시 최소 30일 동안 쓸 수 있는 분량의 탄약을 비축해야 한다는 나토의 권고에도 크게 미달하는 것이다.

이는 독일이 세계 5대 무기 수출국에 포함되긴 하지만, 대량 생산 위주의 과거의 산업 구조가 현재는 최첨단 무기의 소량 생산으로 재편됐기 때문이라고 볼프강 슈미트 독일 총리실장은 설명했다.

한편, 무기 생산량을 늘리려는 시도도 유럽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WSJ은 소개했다.

독일은 나토 규격의 포탄과 우크라이나가 사용하는 소련 규격의 무기를 생산하기 위해 루마니아에 있는 소련 시대의 공장을 보수·확장하는 작업에 공동 투자할 예정이다.

노르웨이 군수회사 남모 역시 평시보다 포탄 생산량을 10배 이상 늘리려 하고 있으며, 체코슬로바크 그룹은 내년에 155㎜ 규격 포탄을 2배 늘린 10만 개까지 생산할 계획이라고 이 회사들의 CEO가 각각 밝혔다.

미 싱크탱크 외교정책연구소(FPRI)의 롭 리 선임연구원은 "유럽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포탄을 증산하는 것"이라며 "이것이 내년에 최대 현안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