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디자인 변화만으로도 주목…건물주인 "골목 활성화 기대"
[현장in]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 '책 모양 건물' 명물 될까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은 해방 이후 부산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일본인과 귀환 동포들이 책자를 거래하면서 탄생한 이곳은 한국전쟁 시기 미군 부대나 피란민들이 내어놓은 서적이 활발하게 거래되며 자리를 잡았다.

1970년대 부산이 산업화로 성장하며 교육에 대한 열의가 높아지자, 한때 이곳에는 70여 개의 서점이 들어설 정도로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원도심이 쇠퇴하고, 인터넷 서점의 등장과 영상문화 발달로 책자 수요가 줄면서 골목은 2000년대 들어 급격히 침체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30여 곳의 서점만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현장in]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 '책 모양 건물' 명물 될까
최근 이런 책방골목 입구에 독특한 건물이 만들어지는 등 민간 주도의 변화가 생길 조짐이 보인다.

골목 입구 주변 4층짜리 평범한 건물이 리모델링에 들어가더니, 건물 외관이 책이 여러 권 꽂혀 있는 듯한 형태로 깜짝 변신해 시민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책꽂이에 꽂힌 책처럼 생긴 건물이 모습을 갖추자 시민들의 눈길을 바로 끌었고, 그 관심은 바로 뒤편의 책방 골목에까지 이어지며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현장in]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 '책 모양 건물' 명물 될까
20일 부산 중구에 따르면 이 건물은 당초 허물어질 위기에 처해있던 건물이다.

민간 개발업체에서 매입해 건물을 철거한 뒤 15층 규모의 오피스텔을 지을 예정이었다.

이 건물에는 서점이 3곳이나 입주해 있었던 터라 만약 철거됐더라면 책방 골목 소멸의 가속화가 일어날 뻔했다.

이에 보수동을 지키려는 시민들은 오피스텔 건설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반전이 일어났다.

시민사회와 몇 차례 만남을 가진 민간 개발업체에서 골목의 정체성에 맞는 건물로 리모델링하겠다며 개발 방향을 선회했다.

해당 건물 소유주인 케이엘디엔씨 김대권 대표는 "처음에는 다른 건물처럼 오피스텔로 개발하면 된다고 쉽게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렇게 개발해서는 안 될 위치에 놓였다는 것과 상징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분이 보수동 책방 골목을 보전하려고 애를 쓰는데 이런 노력을 외면하면서까지 돈을 벌고 싶지 않아 개발 방향을 바꾸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장in]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 '책 모양 건물' 명물 될까
김 대표는 이후 책방 골목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면서 건물을 책 모양으로 디자인해야겠다고 아이디어를 냈다.

골목을 살리려면 '소프트웨어' 만큼이나 '하드웨어'도 중요하다는 게 김 대표 생각이었다.

현재 외부 공사를 끝내고 내부 공사 중인 이 건물은 12월 중 본격 운영될 것으로 알려졌다.

1층은 기존 서점이 자리하게 되고, 2·3층은 카페, 4층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된다.

김 대표는 "우리 건물을 시작으로 이 일대에 책 모양 외관의 건물이 몇 개 더 만들어진다면 보수동 책방골목이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공간이 되리라 생각한다"면서 "사람이 다시 찾아오는 책방골목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중구 관계자는 "구청에서도 노력해 왔지만, 지금은 민간 주도로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하드웨어도 변화가 일고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된다"면서 "보수동 책방 골목 활성화의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춘희 부산경남미래정책 대표는 "지역 대표 특성을 반영한 건물이 지역의 랜드마크 건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런 일을 민간에만 맡겨두지 말고 공공건축물들도 이런 랜드마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어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