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영 번역가 "10년간 프루스트에만 빠져살다보니, 아직도 번역 안 끝난 기분이에요"
10년 넘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소설 하나만 번역했다. 낮에 자고 매일 밤 12시에 일어나 하루 6~8시간씩 번역 작업에 매달렸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코르크로 문틈을 막고 방 안에 틀어박혀 이 소설을 14년간 집필한 것처럼.

최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번역을 마친 김희영 한국외국어대 프랑스어과 명예교수(73·사진)는 16일 서울 신사동 민음사 본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10년간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것처럼 살았다. 아직도 번역 작업이 끝난 것 같지 않은 기분”이라며 웃었다.

그는 2012년 1권을 번역한 이후 10년 만에 최근 13권을 출간하며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분량은 5704쪽에 달한다. 그는 “프루스트의 소설은 ‘서양문화의 보고’인데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아 프랑스문학자로서 사명감을 갖고 번역하게 됐다”고 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먹으며 추억에 젖어드는 장면이 유명하다. 그런데 막상 책을 다 읽은 독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다소 난해한 서술 방식을 통해 인간 내면과 시대상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프루스트는 1909년부터 1922년 폐렴으로 숨을 거두기 전까지 14년을 매달려 이 작품을 썼다. 18일은 프루스트 타계 100주기다.

김 명예교수는 “프랑스의 저명한 비평가이자 철학자인 롤랑 바르트가 말했듯이, 이 소설은 당대 미술, 음악 작품과 일상사 등 백과사전적 지식이 담겨 있어 문화사적으로도 가치가 높다”며 “프랑스인들에게 ‘기억의 궁전’으로 불리는 이유”라고 했다.

김 명예교수는 국내에서 프루스트 전문가로 꼽히는 프랑스문학자다. 한국외대 프랑스어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 3대학에서 프루스트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런 그에게도 번역 과정은 쉽지 않아 지도교수이던 장 미이 파리 3대학 교수와 수시로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번역 작업을 이어갔다.

김 명예교수가 꼽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매력은 크게 세 가지다. “이 소설은 인간이란 단일한 인간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수없이 변하는 존재라는 걸 고찰했고, 유대인이나 성소수자 등 사회 문제도 다뤘습니다. ‘나와 다른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질문은 현재에도 유효하죠. 또 이건 사랑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소설이기도 합니다.”

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번역한 시간은 행복한 시간이었다”며 “프루스트를 평생의 동반자로 삼을 수 있게 돼 감사하다”고 했다.

방대한 분량, 난해하다는 ‘악명’에도 번역을 기다리며 책을 좇아 읽는 독자가 적지 않았다. 김 명예교수는 “고교 한문 교사라는 독자가 ‘프루스트를 따라서 파리 여행도 했다’고 편지를 보내온 게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수집가의 책장에 장식품처럼 꽂혀있는 책이 아니라, 지하철에서도 들고 다니면서 읽는 책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 명예교수는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이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할 해설서를 집필할 예정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