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 ‘트리플 빌’ 중 ‘아티팩트 Ⅱ’ 장면  /국립발레단 제공
국립발레단 ‘트리플 빌’ 중 ‘아티팩트 Ⅱ’ 장면 /국립발레단 제공
“자자, 처음부터 끝까지 끊지 않고 가볼게요. 각자 음악을 느낀 대로 잘 표현해 보세요. 선생님(피아니스트 조재혁) 연주 부탁해요.”(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

지난 15일 오후 서울 서초동 국립발레단 연습실. 오는 18~2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르는 국립발레단 신작 ‘트리플 빌’ 중 첫 편 ‘Ssss…’의 리허설이 시작됐다. 조재혁의 쇼팽 ‘녹턴’ 연주에 맞춰 무용수 혼자 춤을 추다가 남녀 두 쌍이 각각 2인무를 췄다. 한 여자와 두 남자가 격렬하게 몸을 부딪히는 3인무도 펼쳐졌다. 이들의 춤은 지면에 발 이외에 몸이 닿지 않는 전통 발레 동작과는 달랐다. 바닥에 드러누워 몸을 떨기도 하고 뒹굴기도 하며 발레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몸사위로 음악을 표현했다.

‘트리플 빌’은 세 편의 작품을 한 무대에 올리는 공연 형태를 의미한다. 국립발레단은 이번에 에드워드 클러그의 ‘Ssss…’와 윌리엄 포사이드의 ‘아티팩트(Artifact) Ⅱ’, 우베 숄츠의 ‘교향곡 7번‘을 연이어 공연한다. ‘Ssss…’와 ‘아티팩트 Ⅱ’는 한국 초연이고, ‘교향곡 7번‘은 2015년 이후 7년만의 무대다.
세 편은 각각 쇼팽과 바흐, 베토벤의 명곡에 춤을 입힌 모던·신고전 발레의 대표작들이다. 이들 작품으로 ‘트리플 빌’을 구성한 강수진 단장은 “쇼팽과 바흐, 베토벤만큼이나 개성과 색깔이 뚜렷한 작품들을 한 무대에 올리는 것은 무용수들에게 새로운 도전”이라며 “고전·낭만 발레에 익숙한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Ssss…’에는 쇼팽의 녹턴 중 1번과 2번, 20번, 19번, 8번이 차례로 흐른다. 작품 제목은 모든 것이 조용해지는 밤에 평소 듣지 못한 마음의 소리와 감정의 리듬이 더 크게 울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남녀 세 쌍의 무용수가 피아니스트를 등지고 춤을 춘다. 이날 처음 무용수들과 합을 맞춘 조재혁은 “일반 발레 공연처럼 음악이 춤에 따라가는 게 아니라 독립적인 예술로 무대 위에 존재하는 게 특징”이라며 “즉흥적이고 낭만적인 쇼팽에 알맞는 구성”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품의 주역을 맡은 수석 무용수 박슬기는 “음악에서 느껴지는 나의 감정을 표현하면 된다”며 “정해진 동작을 누가 추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의 춤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Ssss…’가 감정적이고 즉흥적이라면 ‘아티팩트Ⅱ’는 이성적이고 정형적이었다. 이날 리허설에서 26명의 군무에 둘러싸인 남녀 두 쌍이 바흐의 ‘샤콘느’에 맞춰 춤을 췄다. 군무가 리더의 동작을 따라 집단체조 같은 팔동작을 반복하고, 남녀 두 쌍은 발레의 기본 자세를 바탕으로 몸을 길게 늘여 당기는 동작 등 안무가 윌리엄 포사이드 특유의 2인무 동작을 다양하게 선보였다. 감정을 배제한 인간의 몸으로 만드는 갖가지 조형의 움직임에서 바흐의 음악이 들리는 듯했다.
이 작품은 음악도 MR(녹음된 음악)을 쓴다. 강 단장은 “음악의 템포가 조금만 달라져도 춤이 흐트러진다”며 “무대 위 무용수들의 음악적 정확성을 중시한 포사이드 안무의 특징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교향곡 7번‘은 ’관현악 발레의 창시자‘로 꼽히는 숄츠의 최고 히트작이다. 베토벤 교향곡 7번의 화려하고 역동적인 선율과 리듬을 무용수 24명이 다채로운 춤의 조합으로 형상화한다. ‘아티팩트Ⅱ’에선 무용수들이 무표정했다면 이 작품에선 음악에 실린 기쁨과 슬픔의 표정을 마음껏 드러냈다.
이날 리허설에선 MR을 틀었지만, 실제 공연에서는 제임스 터글이 지휘하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춰 춤을 춘다. 터글은 “베토벤이 봤다면 마음에 들어 했을 작품”이라며 “음악과 하나 되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보다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