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 초석' 다진 윤관 前 대법원장 별세
제12대 대법원장을 지낸 윤관 전 대법원장이 14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윤 전 원장은 1958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1965년 광주지법 판사로 임관했다. 서울민사지법·형사지법·광주고법·서울고법 부장판사와 청주·전주지법원장을 거쳤다. 1986년 대법관이 됐고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지냈다. 1993년 9월 제12대 대법원장에 임명됐다. 연세대 출신 첫 대법원장이다.

윤 전 원장은 사법개혁의 초석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재임한 1997년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 제도가 시행됐다. 제도 도입 전 판사는 수사기록만 보고 구속영장 발부를 결정했다. 수사기관은 우선 구속부터 한 뒤 추가 수사를 하는 관행이 있었던 만큼 검찰이 영장실질심사 도입에 반발했다.

그러나 윤 전 원장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영장실질심사는 뿌리를 내렸다. 영장실질심사가 도입되면서 구속영장이 청구된 모든 피의자가 판사를 만나 방어할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구속영장 청구 건수는 1996년 15만4435건에 달했지만 영장실질심사 도입 후 꾸준히 줄어 지난해 2만1988건이 됐다.

윤 전 원장 시절인 1995년 서울민사·형사지법을 통합한 서울중앙지법이 출범했고, 1998년에는 특허법원·행정법원이 신설됐다. 기소 전 보석 제도 도입, 간이 상설법원 설치, 상고심사제와 증인신문 방식 개선 등도 이뤄졌다.

윤 전 원장은 사법부 독립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일선 판사실과 대법원장실에 걸려 있던 대통령 사진을 떼어냈다. 대통령 국외순방 때 대법원장이 환대를 나갔던 관행도 없앴다. 청와대에 법관을 파견하거나 정보기관 직원이 법원에 출입하는 일을 막았다.

윤 전 원장은 청렴한 법관의 표상으로 꼽혔다. 대법관 임명 당시 출가한 자녀의 재산까지 모두 합쳐 5억원대 재산 신고를 했는데, 대법관 중 최하위였다. 외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점심식사 대부분을 구내식당에서 배달시켜 집무실에서 혼자 해결했다.

윤 전 원장은 퇴임 후 2004년부터 영산법률문화재단 이사장직을 맡았다. 청조근정훈장(1999년), 국민훈장 무궁화장(2015)을 받았다. 저서로 <신형법론>을 남겼다. 유족으로는 부인 오현 씨와 아들 윤준(광주고법원장), 윤영신 씨(조선일보 논설위원), 남동생 윤전 씨(변호사) 등이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차려졌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