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을 읽고 있는 마릴린 먼로. (출처: MARILYN MONROE ARCHIVE)
<풀잎>을 읽고 있는 마릴린 먼로. (출처: MARILYN MONROE ARCHIVE)
“철학에 미친 독서광.”

아이돌 그룹 ‘(여자)아이들’의 신곡 ‘Nxde(누드)’는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를 이렇게 묘사한다. ‘금발 미녀의 전형’ ‘백치미의 상징’으로 통하는 그 먼로가 맞다.

그녀의 금발이 사실은 염색의 결과였듯, 섹스 심볼 이미지 뒤에 있는 진짜 먼로의 삶을 대중은 몰랐다. 그녀가 죽고 난 뒤 경매에 먼로의 애장품이 나왔는데, 거기엔 400권이 넘는 책이 있었다. 문학, 신학 등 분야를 넘나드는 그의 독서 이력은 이렇게 세상에 공개됐다.

월트 휘트먼의 시집 <풀잎>은 그중에서도 먼로가 즐겨 읽은 책이다. 그녀가 이 시집을 읽고 있는 모습은 여러 장소에서 사진으로 찍혔다.

<풀잎>은 미국 시의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미국의 가치’로 꼽히는 평등과 자유를 노래하는 시들로 꾹꾹 채워서다. “나는 나 자신을 찬양한다”고 시작하는 대표작 ‘나 자신의 노래’는 민주주의 정신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시라는 평가를 받는다.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휘트먼에 대해 “(유럽의 아류가 아닌) 미국 시인으로 분류할 수 있는 첫 번째 시인”이라고 했다.

신문사 조판공, 교사 등으로 생계를 꾸리던 휘트먼에게 시인은 포기할 수 없는 꿈이었다. 평생 이 한 권의 시집을 내기 위해 씨름했다. 1855년 처음 시집을 낸 이후 사망한 해인 1892년까지 40년간 시를 고치고, 또 고쳤다.

그의 시는 지금도 널리 사랑받는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학생들이 외치는 “오 캡틴, 마이 캡틴”은 휘트먼의 시 중 일부다.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 영화 ‘노트북’에도 휘트먼의 시집이 등장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휘트먼의 시에서 제목을 따왔다.

먼로는 왜 이 시집에 빠졌을까. 화려한 은막의 스타와 고독한 독서가 사이, 먼로의 삶은 피로했다. 책을 사랑하는 마음조차 무시당했다.

“도스토옙스키가 쓴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먼로의 말에 한 기자는 “도스토옙스키의 철자를 아느냐?”고 무례한 질문을 던졌다.

먼로는 이렇게 답했다. “혹시 책을 읽어보셨나요? 거기엔 그루센카라고 하는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하죠. 나는 내가 그 역할에 아주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세간의 오해와 무시에 지친 먼로에게 휘트먼의 시는 한 줌의 위안이 됐다. 휘트먼의 시 ‘나 자신의 노래’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내가 당당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내 영혼 자체를 변호하거나 이해받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이 시를 읽은 먼로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당신들이 나를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오직 내가 결정하는데.’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