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감 자극 보도 지양…극복 노력 소개하면 사회통합 촉진"
"언론인 80∼100%, 직무 트라우마에 노출…언론사·시민이 나서야"
"재난 당사자 취재는 심리상태 확인 후에"…가이드라인 마련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재난 보도의 적절한 방식에 관한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전문가들이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보도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재난 당사자의 심리적 상황과 어려움을 배려해 취재하고 사회 통합을 염두에 둔 보도를 지향하라는 것이 권고의 핵심이다.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7일 한국언론진흥재단과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공동 주최한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재난 보도 가이드라인' 발표회에서 이런 내용이 담긴 세부 지침을 공개했다.

심 센터장은 재난 당사자를 개별적으로 접촉하기보다는 대책본부나 재난 당사자 대표를 통해 신체와 심리 상태를 확인한 후 조율을 거쳐 취재하라고 권고했다.

"재난 당사자 취재는 심리상태 확인 후에"…가이드라인 마련
그는 특히 당사자가 잘 기억하지 못하거나 몸을 떠는 등 통제하기 어려운 신체적 반응을 보이는 경우는 취재하기 적절한 상황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취재 시 신분을 밝히고 재난 당사자가 장소, 시간, 동반자 등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등 안정된 상황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도 지침에 담겼다.

언론인은 재난 당사자의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태도를 유지해야 하며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당사자가 원하지 않으면 사건에 대해 반복 질문하지 말라고 지침은 당부했다.

또 신상이나 사생활 노출로 당사자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유의하고 가족이 오열하거나 극도로 흥분한 상황이 여과 없이 보도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권고했다.

특히 재난 당사자에 대해 부정적 감정을 부추기는 보도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지침은 권고했다.

코로나19 초기 확산 때 확진자 동선을 공개하면서 특정 집단에 초점을 맞춘 기사가 많았던 것이 문제 사례로 꼽혔다.

지침은 기사에 불쾌감·공포감을 주거나 과장되고 자극적인 수식어를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재난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소개해 사회 통합과 공동체의 성장을 촉진하라고 보도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재난 당사자를 능동적 주체로 조명하고, 재난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긍정과 낙관적 요소를 소개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취지다.

"재난 당사자 취재는 심리상태 확인 후에"…가이드라인 마련
심 센터장은 이태원 참사 직후 시민들이 필사적으로 심폐소생술(CPR)을 하는 모습을 소개한 것이 비극 속에서 긍정적인 요소에 주목한 것이며, 사회를 균형 있게 보는 데 도움이 되는 보도였다고 평가했다.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위원장은 충격적 사건을 직접 겪지 않은 이들이 간접 경험을 통해 외상을 입는 '2차 트라우마'를 겪는다며 언론인 보호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주로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이나 상담사가 2차 트라우마를 겪는 경우가 많지만, 트라우마를 취재하는 언론인도 2차 트라우마를 경험할 수 있다"며 언론인의 80∼100%가 직무 관련 트라우마에 노출되며 92%가 반복·다발적 트라우마에 노출된다고 연구 동향을 소개했다.

이와 관련해 세부 지침에는 기자를 보호하기 위한 권고 사항도 포함됐다.

언론사는 재난 보도의 전문성을 높이는 교육·훈련 과정을 마련하고 안전 장비를 충분하게 지원해야 한다.

또 위험이 예상되는 현장에 기자를 홀로 파견하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

현장 기자에게 충분한 취재 자율성을 부여해 돌발 상황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하고 한 명을 장기간 파견하기보다는 교대 근무로 스트레스의 위험을 낮추라고 지침은 권했다.

기자가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을 받게 하고, 온라인상의 괴롭힘에 대해서는 법률적 행정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이드라인은 CBS 권영철 대기자, 정은령 서울대 팩트체크센터장,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등 언론인, 언론학계, 트라우마 학계의 추천을 받은 전문가 추진단의 논의를 거쳐 마련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