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레이시 흐레스코 펄 오클라호마대 법대 교수는 2016년 논문 '압사에 대한 성문법적 해결책'(A Statutory Solution to Crowd Crush)에서 "과학적인 군중 관리·통제를 의무화하는 성문법 도입만이 압사 사상자 수를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2015년부터 압사 문제를 연구해온 권위자인 펄 교수의 논지는 간명하다.
압사 사고를 부르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군중의 밀도다.
밀도가 1㎡당 5명을 넘어서면 압사 위험이 급증하며, 7명에 이르면 거의 필연적으로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
조금이라도 안일하게 대처하는 순간 피하기 어려워진다.
그런데 경험적으로 법 도입 이외의 방법은 참사 방지 효과를 거두지 못하기 때문에 '압사방지법'이 필요하다는 게 펄 교수의 주장이다.
구체적으로, 밀도가 1㎡당 7명 수준이 되면 사람들은 유체의 일부처럼 비자발적으로 움직이게 돼 개인의 의지로 사고를 막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사람 수가 최대 수용 인원에 못 미쳐도 밀도가 임계점을 넘으면 사고로 이어지므로 압사는 '오픈런' 행사, 콘서트장 등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고 펄 교수는 진단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자마라트 다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무슬림이 성지순례를 위해 찾는 이 다리에서는 1990년 1천426명이 숨지는 등 비극적인 압사 사고가 반복돼왔다.
당국은 2006년 다리를 증축했지만 2015년 700명 이상이 압사로 숨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펄 교수는 "특정 장소를 정비하더라도 그 장소 주변에 운집하는 군중에 대한 대비책은 될 수 없기에 일어난 일"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5년 참사는 자마라트 다리가 아니라 다리로 향하는 길목들에서 벌어졌다.
펄 교수는 "사고를 막으려면 개별 정비가 아니라 포괄적인 군중 관리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동기 부족, 상업적 압력 등의 이유로 압사 예방을 자율에 맡기는 것도 한계가 분명하다는 게 펄 교수의 주장이다.
군중 과학에 대한 재판부의 무지로 민사소송도 압사 예방이나 피해 회복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도 지적했다.
그러면서 참사를 실질적으로 예방하려면 구체적인 압사 방지 조치를 의무화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는 행사 이전 단계에서는 주요 이동 경로 분석 및 병목현상 요인 제거, 구역별 밀도 예측, 시간별 차등 도착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행사 도중에는 실시간 모니터링, 주최자와 경찰·소방당국, 인파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 등이 확보돼야 한다고 짚었다.

2021년 11월 휴스턴 '아스트로월드 축제'에서는 압사 사고로 10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는 "이태원 참사는 너무도 비극적이고 믿을 수 없다"며 "희생자와 가족·친지, 한국 공동체에 온 마음을 다해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
이어 "주최자가 없는 행사라도 큰 인파가 특정 시각에 몰릴 것이 예상된다면 국가 등의 주체가 위험을 낮출 조처를 할 법적 의무가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한국도 이 같은 연구 결과를 진지하게 검토해볼 만하다고 평가했다.
공 교수는 "압사 사고는 권장사항만으로는 예방하기 힘들다"며 "압사방지법이 그런 허점을 보완하는 것은 물론 입법을 계기로 국민들이 압사 방지를 위한 대처법을 더 정확히 익히게 되는 효과도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 대해서는 "지역에서 벌어지는 행사인 만큼 일차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 압사 예방 의무를 부과하고, 경찰·소방에 협조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