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직전 11건에 달하는 112 구조 신고가 접수됐음에도 사고를 막지 못한 경찰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법조계에선 업무상과실치사상과 직무유기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중론이다.

2일 경찰이 전날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참사 약 4시간 전인 오후 6시34분께 “사람이 내려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 올라오니까 압사당할 것 같다”며 “인파가 너무 많은데 통제해줘야 할 것 같다”는 요청이 들어왔다.

경찰이 압사 사고 위험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는 점이 녹취록 공개로 드러난 것이다. 이후 참사 발생 전까지 총 11건의 신고가 접수됐지만 실제로 출동이 이뤄진 것은 네 번에 불과했다. 인파가 많아 사고가 우려된다는 내용이 신고로 들어온 이상 경찰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발생했다는 게 법조계의 해석이다.

상당수 법조인은 “경찰관직무집행법 5조 역시 경찰에 대응할 의무가 있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 직후 정부는 ‘경찰에 부여된 권한이나 제도로는 참사를 예방하고 선제 대응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그러나 직무집행법 5조는 극도의 혼잡이나 위험한 사태가 있을 때 위해 방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해당 상황 속 경찰관의 권한과 책임 범위 내에서 사고 예방을 위한 적극적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도출되는지 여부가 법정에서 쟁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당한 이유 없이 사고 예방을 위한 직무를 수행하지 않았다면 직무유기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는 현재로선 명확하지 않다. 또 다른 변호사는 “경찰 내부에서 어떤 보고와 지시가 이뤄졌는지 등을 정확히 밝혀야 혐의 적용 가능성과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구체화될 것”이라며 “의사 결정권자에게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관 등 개개인의 형사책임과 별개로 국가배상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는 여전히 우세하다. 위험성이 충분히 인식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조치가 미흡했다는 점이 녹취록 공개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1998년 트랙터를 도로에 방치해 사고를 유발한 경찰관의 행위가 직무집행법 5조를 위반했다며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