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비롯한 주요 도시의 인프라 시설을 겨냥해 대규모 미사일 공습을 재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흑해함대 공격에 대한 보복 공습 차원"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국방부는 31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러시아군이 고정밀 장거리 무기로 우크라이나군 지휘부와 주요 에너지 기반 시설을 공격했다"며 "모든 목표물을 겨냥한 정밀 타격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데니스 슈미갈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러시아 드론과 미사일이 10개 지역 18개 목표물을 공격했다"며 "이들 목표 대부분이 에너지 시설이었다"고 밝혔다.

이날 공습으로 키이우 인구의 80%가 물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은 휴대전화도 불통이 됐다. 당국은 주민들에게 "키이우 외곽 지역의 경우 단수 및 단전이 장기간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알렸다. 제2의 도시 동북부 하르키우에서는 지하철 운행이 중단됐고, 남부의 전략적 요충지 자포리자도 일부 지역이 정전됐다. 중부 도시 크레멘추크에서는 수력발전소가 공격을 당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공습과 흑해함대 군함 피격과의 개연성을 묻는 질문에 "부분적으로 맞다"고 답했다. 지난 29일 크름반도 세바스토폴 기지에 정박해 있던 러시아 흑해함대 군함이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점을 거론한 것이다. 러시아는 지난 10일에도 크름대교 폭발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키이우 등에 대규모 공습을 가해 민간인 수십 명의 인명 피해를 발생시켰다.

러시아는 자국 흑해함대 피격을 이유로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 협정에도 더 이상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해당 협정은 세계 주요 곡창지대 중 한곳인 우크라이나가 전쟁으로 인해 곡물 공급을 원활히 못하게 되면서 글로벌 식량난 우려가 커지자 지난 7월 유엔과 튀르키예(터키)의 중재로 한시적으로 타결됐었다. 흑해항의 안전 루트를 통해 곡물을 운송하기로 한 협정이다.

협정 시한을 연장하는 협상에서 빠지겠다고 밝힌 러시아에 대해 이날 미국 국무부는 비난 수위를 높였다. 저소득국의 식량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산 밀의 80% 이상이 개도국 등 제3국에 공급돼 온 점을 들어 "협정 파기 결정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만의 문제는 아니다"고 비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