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열차에서 무임 승차한 후 다른 승객의 좌석을 차지한 여성이 승객과 승무원의 요구를 무시한 채 끝까지 버티는 모습이 포착됐다.13일 JTBC 사건반장 보도에 따르면, 제보자 A씨는 전날 광명역에서 부산역으로 향하는 KTX 열차에 탑승했다. 그러나 A씨가 예매한 좌석에는 이미 다른 여성 승객 B씨가 앉아 있었고, 옆 좌석에는 가방이 놓여 있었다.A씨가 "제 자리에요"라며 자리를 비켜 달라고 요청했지만, B씨는 갑자기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A씨가 어깨를 흔들어 깨우려 했으나 B씨는 앓는 소리만 낼 뿐 반응하지 않았다고 한다.A씨뿐만 아니라 가방이 놓인 좌석의 주인인 남성 승객과 승무원도 나서 B씨를 깨우려 했지만, 그는 끝까지 일어나지 않고 버텼다.결국 주변 승객들이 포기하고 자리를 떠나자, B씨는 눈을 뜨고 과자를 먹으며 흥얼거리는 모습을 보였다.승무원들이 여러 차례 자리 이동을 요청했으나 B씨가 응하지 않자, 철도경찰이 출동했다. 경찰은 "선생님, 이 짐 저희가 가져가겠습니다. 세 번, 네 번 경고했습니다. 일어나셔야 합니다"라고 여러 차례 요구했으나 B씨는 계속 자는 척을 하며 무시했다.철도경찰이 강제 조치를 예고하며 팔을 붙잡고 일으키려 하자, B씨는 아픈 소리를 내며 저항했다. 결국 열차가 동대구역에 도착한 후에야 B씨는 스스로 자리에서 일어나 하차했다.이 과정에서 열차는 약 10분가량 지연됐으며, A씨와 옆자리 승객은 자신이 예매한 좌석을 이용하지 못하고 빈자리를 찾아 이동하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A씨는 "B씨 목적지가 동대구였던 것 같다"며 "승무원과 철도경찰이 대신 사과하며 애쓰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문제가 생길까 봐
지난 1월 김해국제공항에서 이륙을 준비하던 에어부산 홍콩행 BX391편 여객기에서 발생한 화재는 보조배터리 내부 합선으로 시작됐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조사 결과 드러났다.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항철위)는 14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정밀분석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밝혔다.국과수 분석 결과 기내에서 발견된 보조배터리 잔해에서는 다수의 전기적 용융흔(녹은 흔적)이 식별됐다. 이에 배터리 내부에서 양극과 음극이 합선된 상태를 뜻하는 '절연파괴'가 발생하면서 최초 발화됐을 가능성이 거론됐다. 국과수는 배터리의 훼손이 심해 정확한 합선 이유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배터리가 아닌 다른 곳에서 불이 시작됐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부연했다.국과수는 감정 결과 회신서에서 "배터리 잔해는 전반적으로 심하게 연소돼 화재 이후의 형상에 대한 검사만으로 어떤 원인에 의해 배터리 내부에서 절연파괴가 발생했는지는 직접적인 논단(판단이나 결론을 내리는 것)이 어려운 상태"라고 언급했다.그러면서도 "항공기 전기 배선이나 조명 기구, 기판 잔해 등 내부 구조물에서는 발화와 관련지을 만한 전기적 특이점이나 특이 잔해 등은 식별되지 않는 상태"라며 "항공기 내부 시설물에 의한 발화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덧붙였다.항철위는 "현재까지 조사 결과를 토대로 보조배터리에 의한 화재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계속 조사를 수행할 예정"이라며 "사고조사 과정에서 안전 조치가 필요한 경우 항공사 등에 안전권고를 발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
현대음악 분야에서 '전설'로 평가 받는 러시아 여성 작곡가 소피아 구바이둘리나(1931~2025)가 현지시간 13일 새벽 영면에 들었다. 향년 93세.생전 구바이둘리나는 자신의 음악에 대해 영성과 간구함이 담긴 교회 음악과 같다고 표현했다. 평단은 그의 음악에 대해 수학적 구조, 직관적 감각을 결합해 독창적이라고 평가하며 그를 20세기 후반 가장 중요한 음악가 중 하나로 꼽았다.고인은 1931년 타타르 공화국 영토인 크리스토폴에서 타타르계 무슬림 아버지와 폴란드계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소련 체제 모스크바에서 음악을 공부한 그는 실험적인 기법을 활용하면서도, 깊은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영적이고 신비로운 색채를 음악에 담아냈다. 러시아의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로부터 작품의 독창성을 인정 받았지만, 1979년 소련 작곡가연맹이 발표한 7명의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작품 발표에 억압을 받기도 했다. 고인이 이 시기에 창작한 음악들은 시간이 흘러 발표가 됐고, 많은 후배 음악가들에 영향을 미쳤다. 고인은 1992년 독일 함부르크로 이주한 이후 명성보다 내면적 탐구에 중시한 음악을 창작하는 데 집중했다. 일생동안 100편 이상의 작품을 남겼으며 대표작으로는 1980년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의 연주를 듣고 얻은 영감을 악상에 쓴 바이올린 협주곡 <오페르토리움>이 있다. 이 작품은 레이프 세게르스탐이 지휘한 비엔나 방송교향악단의 연주로 크레머가 초연했다. 1982년과 1986년 두번의 개작을 거쳐 크레머에게 헌정했다. 1986년 발표한 12악장으로 쓰여진 교향곡 <소리들...침묵들...>은 피보나치 수열을 사용해 작곡한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