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여성들은 자신을 저평가하는 경향이 있어요. 자신의 배짱을 믿으세요.(trust your guts)”

지난 21일 저녁 미국 뉴욕 소호의 앵커리지캐피털그룹 본사, 깔끔한 정장 차림을 한 여성들이 퇴근 시간 하나둘 모여들었다. 이날 열린 행사는 뉴욕 KFS(한인 금융인 협회) 연레 여성 포럼. 월가의 내로라 하는 투자 은행과 펀드 등 금융사에서 최고 위치까지 올라간 시니어 여성들이 후배 여성 금융인들을 위해 연 자리다. KFS는 뉴욕 금융권에서 근무하는 한인들의 조직이다.
"아시안 여성, 자신을 믿고 관계의 벽 허물라" 월가 최고 자리 오른 워킹맘 4인의 조언
행사에는 산드라 슈베르트 골드만삭스 소비자·WM MD(전무), 스텔라 킴 터커 트루이스트증권 테크 기업·IB 담당 대표(헤드), 앤 정 블랙스톤(그로스) 소비자 부문 글로벌 대표(헤드 ), 수 킴 앵커리지캐피털그룹 파트너 등이 연사로 참여했다. 아시아인이 드물던 시절 경력을 시작한 이들은 모두 서너명의 자녀를 둔 ‘슈퍼 워킹맘’들이기도 하다. 뉴욕에서 근무하는 젊은 여성 금융인들, 투자 업계 진출을 원하는 학부·대학원생 100여명이 이들의 성공 노하우를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웠다.

연사들은 일과 사생활의 벽을 높게 쌓지 말 것을 조언했다. 슈베르트 전무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영화 제목처럼 ‘일하고(work), 놀고(play), 베풀라(give)’는 것을 캐치프레이즈처럼 생각하며 살아 왔다”며 “일을 위해 사람을 만나는 것을 놀이처럼 즐기고, 배우려는 태도를 갖추면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터커 대표도 “나이가 먹으면 여러가지 정체성이 하나로 합쳐지기도 한다”며 “고객이 친구가 되고, 친구가 고객이 되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일과 가정의 양립 등 예민한 부분을 서로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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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도 언급했다. 킴 파트너는 “자신이 원하는 분야가 계속 좋아하며 잘 할 수 있는 일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며 “나만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갈 것”을 주문했다. 정 대표는 “‘틀에 박히지 않은, 비전통적인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며 일한 결과, 백인 남성으로만 구성된 14명의 투자 위원회에서도 제 역할을 하게 됐다”며 “어떤 딜(거래)을 할 때 남들과 다른 창의적인 접근법을 도입하려는 노력을 할 것”을 조언했다.

실패를 두려워 말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견도 이어졌다. 슈베르트 전무는 “과거 패션 잡지에서 일하다가 투자은행 업무 기회가 생겼을 때, 해보지 않은 분야라 고민이 컸다”면서도 “리스크를 감당했던 것이 평생 즐기며 하는 직업이 됐다”고 돌이켰다. 정 대표는 “그동안의 삶은 덜 중요한 일들을 우선순위에서 제거해나가는 과정이었다”며 “그동안 이뤄놓은 경력을 믿는다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한 100% 이상 준비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성간의 끈끈한 멘토링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워킹맘’으로서 힘든 부분들이나 업무에서의 어려움도 관계의 힘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시각이다. 이들은 주니어 시절 가장 아쉬웠던 부분도 ‘여성 커뮤니티의 부재’라고 입을 모았다. 킴 파트너는 “일과 가정 생활을 잘 병행하려면 인간 관계도 효율적으로 시간 관리를 하는 것이 좋다”며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소그룹을 만들고, 단체 이메일과 캘린더 등을 활용해 의견을 자주 교환할 것”을 조언했다. 터커 대표도 “남녀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서로 다른 조언을 해줄 수 있다”며 “성별 구분 없이 멘토-멘티 관계를 넘어설 수 있는 관계를 많이 만드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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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이 끝난 뒤 연사들과 월가의 새내기 후배들은 칵테일 파티에서 더욱 깊은 대화를 나눴다. 행사에 참여한 손민영·코니 고 미국 콜럼비아대학교 데이터 분석 석사는 “금융권 취업을 꿈꿔 선배들에게 조언을 얻기 위해 왔다”며 “자신의 배짱과 감을 믿으라는 말에 많은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김진유 삼성자산운용 매니저는 “아시안과 여성이 모두 드물던 시절 월가에서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간 선배들이 조언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국내에서도 서로 진심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성 금융인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뉴욕=정소람 특파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