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수낵 정권 정책 방향 주목…경제위기·신냉전·에너지난 등 복합난제 산적
일시적 긴축과 증세…탈규제에는 속도조절 가능성
수낵, 감세안 폐기 나설듯…"일단 긴축·우크라 추가지원 보류"
리시 수낵 총리의 집권과 함께 영국 정부의 정책 방향에도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전임 리즈 트러스 총리를 44일만에 사임하도록 한 감세안의 폐기가 예고되는 등 트러스의 경제정책과는 일단 뚜렷한 선을 그을 것이 확실시된다.

더타임스 등 영국 언론은 24일(현지시간) 수낵 총리 내정자의 공약, 영국의 전반적 여건을 토대로 정책기조를 내다봤다.

◇ 긴축 돌입…트러스 감세안 폐기·국방예산부터 손댈 듯
먼저 리즈 트러스 전임 총리의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 기조는 최소한 일시적으로는 물 건너 간 게 분명하다.

수낵 내정자는 전날 트위터를 통해 "영국은 위대한 나라이지만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했다"며 "그게 내가 보수당 지도자이자 차기 총리가 되려는 이유"라고 개혁 의지를 밝혔다.

트러스 정부는 450억 파운드(약 73조원) 규모의 감세안을 꺼내 들었다가 파운드화 가치 폭락, 국채금리 급등을 불러 실권했다.

감세안은 트러스 정부에서 이미 폐기됐으며 수낵 정부에서도 되살아날 가능성은 현재로선 없다.

수낵 내정자는 트러스 전 총리와 달리 올해 7월 총리 경선 때 법인세율을 19%에서 25%로 올리겠다고 밝혔다.

현재 여건을 고려하면 그 공약은 고수될 가능성이 크다.

영국 정부가 2026∼2027년까지 직면할 재정 부족은 400억 파운드(약 65조원)로 추산된다.

더타임스는 감세뿐만 아니라 수낵 총리가 국방예산 감축에도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동맹국들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를 국방예산으로 쓰기로 약속했다.

트러스 정부는 이 기준보다 훨씬 높은 3%를 2030년까지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수낵 정부로서는 국방예산을 2%로 유지하면 8년간 재정을 1천570억 파운드(약 256조원) 아낄 수 있다.

수낵 정부는 재정긴축을 위해 병원, 철도와 같은 기간시설 사업도 일부 축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 '예산먹는 하마'…우크라전 장기화에 지원 보류되나
국방예산 절감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 등 대외정책과 관련된 사안이기도 하다.

수낵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황을 관망하며 지원 속도와 수위를 조절해갈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은 우크라이나 군사지원, 대러시아 제재 등 우크라이나전을 둘러싼 서방의 대응에서 한 축을 이루는 국가다.

그러나 불어나는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때문에 적극 지원이 지속하기 힘들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특히 우크라이나전이 격화한 상태로 장기화하면 군사지원이 예산을 빨아먹는 밑빠진 독이 될 수 있다.

더타임스는 며칠 내 재정지출 계획을 발표할 계획이지만 국방지출 결정은 몇 개월 유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벌써 8개월째가 된 우크라이나전은 침공군 러시아가 점령지를 조금씩 빼앗겨가는 상황으로 러시아의 핵위협까지 나온다.

현재로서는 장기 전황이 어떻게 될지 속단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형국이다.

수낵, 감세안 폐기 나설듯…"일단 긴축·우크라 추가지원 보류"
◇ 보수당 정통파 자처하지만 일단 증세·탈규제 감속
수낵 내정자는 트러스 정부의 붕괴를 부른 감세 의제와는 재정 안정을 위해 거리를 둘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과세와 같은 개입을 줄여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보수당 정통 자유주의자를 자처하지만 여건 때문에 일시 증세는 불가피하다.

수낵 내정자는 법인세율 인상과 함께 공공의료 재원 확충을 위해 국민보험 분담금 비율을 1.25%포인트 인상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더타임스는 수낵 내정자가 에너지난 때문에 수익이 급증한 석유, 가스 업체들에 횡재세를 물릴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전 정권이 후폭풍을 맞은 만큼 파격적 규제완화로 경제성장을 자극하는 비전도 일단 신중해질 것으로 보인다.

수낵 내정자는 트러스 정권이 추진한 프래킹(수압파쇄공법)을 통한 셰일가스 추출에 찬성하되 주민 찬성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다.

그는 부동산 개발업체가 녹지에 주택을 건설하는 절차도 더 까다롭게 하고 그린벨트에 대한 지역당국의 용도변경 신청을 차단하는 법 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 에너지 독립 추진…말많고 탈많은 무상의료 개선
에너지 정책과 관련해서 수낵 내정자는 트러스 총리와 비슷한 접근법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45년까지 영국의 에너지 독립을 달성하기를 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셰일가스 추출을 염두에 두며 풍력, 태양광, 원자력 발전에도 공을 들이겠다는 입장이다.

영국 무상의료 체계인 국민보건서비스(NHS)에도 체질 개선 추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일상적인 진료 대기자가 700만명에 달하고 심장마비 환자에게 구급차가 오는 데 1시간이 걸린다는 현실 때문이다.

수낵 내정자는 재무장관 시절에 예산추가가 아니더라도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며 의료체계 디지털화, 업무관행 개선, 의료와 사회돌봄 연계 등을 대안으로 거론한 바 있다.

◇ 브렉시트 여진에 타협 시도할듯…이민정책은 고급인력만 환영
유럽연합(EU)과의 북아일랜드 협약과 관련해서는 타협적인 태도가 예상된다.

영국 영토이지만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생활권을 공유하는 북아일랜드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뒤에도 협약에 따라 EU 단일시장에 남아 EU 규제를 따랐다.

영국은 주권 침해를 이유로 북아일랜드 협약을 일방적으로 폐기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EU도 법적 대응에 나서 갈등이 컸다.

수낵 내정자는 재무장관 시절 EU와 무역전쟁 가능성을 경고하고 협상을 통해 타협책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민정책은 고급인력의 합법이민을 장려하되 미등록 밀입국을 차단하는 투트랙 방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낵 내정자는 과학 등 일부 부문의 이민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해상 밀입국을 막을 태스크포스의 발족, 무자격 이주민 추방, 이들에 대한 주택·호텔 제공 중단, 망명인정 조건 강화 등도 거론했다.

수낵, 감세안 폐기 나설듯…"일단 긴축·우크라 추가지원 보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