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지반 빗물에 쓸려 내려가 위태, 식품 창고에는 곰팡이 슬어
연약한 지반 다짐 생략한 채 분양, 실태 파악 약속은 '감감무소식'
[르포] '모래 위에 지은 성'…국가식품클러스터가 흔들린다(종합)
"이것 좀 봐보세요.

이게 공장 지은 지 4개월 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
전북 익산시 왕궁면 국가식품클러스터에 입주한 한 기업 관계자가 20일 취재진에게 내민 영상은 충격적이었다.

공장 건물을 단단히 받쳐야 할 지반이 통째로 빗물에 씻겨 내려가 있었다.

마치 건물 일부가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업체 관계자가 촬영한 영상을 보면서는 '아…' 하는 탄식이 절로 터져 나왔다.

식품을 보관하는 냉동고 내부에서 쉴 새 없이 물방울이 쏟아졌다.

냉동고에 있던 식자재는 곰팡이가 핀 것처럼 검게 변해 있었다.

해당 업체에서 건물 내부 습도를 측정한 결과 무려 83%가 나왔다.

이 정도면 한증막과 비슷한 수준이어서 식품을 잠시만 놔둬도 금세 상할 수밖에 없다.

[르포] '모래 위에 지은 성'…국가식품클러스터가 흔들린다(종합)
이날 만난 업체 관계자들은 "말 그대로 사기를 당했다"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토지 계약 전 공장 부지의 특성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토지는 애초 물을 머금은 논인데다 하천까지 메워 조성했기 때문에 지반 다짐과 성토, 암거 등 배수 유도 시설 설치가 필수적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러한 작업은 하나도 이뤄지지 않은 채 국가산단의 분양이 이뤄졌다고 업체들은 말한다.

물을 잔뜩 머금은 지반 위에 올린 입주기업 건물은 모래 위에 지은 성처럼 통째로 흔들린다고 했다.

동북아 최초의 식품 전문 국가산업단지를 구축하겠다던 야심 찬 계획과는 동떨어진 '날림 분양'이었던 셈이다.

이미 식품을 취급하는 건물 곳곳에는 금이 갔고, 벽면에는 시꺼먼 곰팡이가 슬었다.

비가 조금만 와도 벌어진 건물 틈새로 빗물이 쉴 새 없이 들이닥친다.

건물을 가득 메운 습기 탓에 화재경보기는 걸핏하면 울린다.

인접 소방관서에서도 "국가식품클러스터 공장입니다.

"라고 하면 이제 "아 또 그런가 보네요"라며 상황을 알아서 파악한다고 한다.

업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공장을 준공한 이후에도 자비를 들여 기약 없는 보수를 이어가고 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건물에서 돈을 들여서라도 인명 피해는 막아야 하지 않겠냐며 하소연했다.

현재 국가식품클러스터에서 지반침해 피해를 겪고 있는 업체는 6곳이다.

면적은 6만6천㎡(2만 평)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르포] '모래 위에 지은 성'…국가식품클러스터가 흔들린다(종합)
이 문제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먼저 다뤄졌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김윤덕(전주 갑) 의원은 국감 기간에 국가식품클러스터를 찾아 피해를 확인하고 "산단을 조성한 LH에 책임이 있다면 피해 기업들을 위해 합당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현준 LH 사장은 "지자체 등 관련 기관과 즉시 협의해 피해 원인 규명에 대한 조사용역을 즉시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올해도 지역 정치권은 산단을 분양한 LH를 현장으로 불러들였다.

지난 18일 민주당 김수흥(익산 갑) 의원은 이정관 LH 사장 직무대행 등과 현장에서 지반침하를 목격하고 "조속히 해결방안을 만들어 피해기업, 지자체와 협의해달라"고 주문했다.

이 직무대행 또한 "공공기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겠다"고 했으나 현재까지 책임 있는 구체적 답은 듣지 못했다고 업체들은 말한다.

안진영 식품클러스터 입주기업 협의회장은 "국가산단이라고 해서 믿고 들어왔는데 이 정도로 허술하게 운영할 줄은 생각조차 못 했다"며 "공기업마저 이런 식으로 분양하면 어떤 기업이 이 나라에서 믿고 산단에 들어오려고 하겠느냐"고 토로했다.

[르포] '모래 위에 지은 성'…국가식품클러스터가 흔들린다(종합)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