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 기관 20명에 직무유기 등 혐의…文정부 안보라인 대거 포함
"컨트롤타워 부재·자진 월북 단정·北 통지문에 시신 소각 번복"
"첩보보고서 등 106건 무단삭제…해경, 월북 배치되는 실험 등 제외·왜곡"
감사원 '서해피살 은폐·왜곡' 서훈 박지원 서욱 등 檢수사의뢰(종합)
감사원은 13일 문재인 정부 당시 핵심 안보라인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왜곡한 것으로 판단하고 관련자들을 검찰로 넘겼다.

감사원은 이날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지난 57일 동안 감사를 벌인 결과 당시 5개 기관에 소속된 총 20명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 지난 정부 고위급 인사들이 대거 수사 대상자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와 해경 관계자도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이들에게는 직무유기, 직권남용, 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 이씨 실종 후 국가위기관리 작동 안해…첩보 106건 무단삭제
감사원은 지난 2020년 9월 22일 해수부 공무원이던 고(故) 이대준 씨가 북한 해역에서 발견된 것으로 파악된 뒤에도 위기관리 매뉴얼에 따른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고, 관련 사실이 은폐됐다고 지적했다.

사건 발생 직후 안보실과 국방부, 국정원, 해경 등의 초동 조치가 모두 부실했으며, 그 사이 이씨가 북한군의 총격에 의해 사망했다고 결론내렸다.

특히 안보실은 이씨 발견 사실을 국방부에서 보고받고도 '최초 상황평가회의'를 하지 않았고, 당시 문재인 대통령에게 서면으로 상황 보고만 올린 뒤 야근 없이 퇴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위기관리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게 감사원 판단이다.

국방부의 군사 대비 태세 강화나 인질 구출 군사작전 검토, 통일부의 송환 노력, 해경의 수색구조 세력 이동 등 구조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국방부는 "통일부 소관으로 군에서 대응할 게 없다"며 내부 회의를 마쳤고, 통일부는 국정원에서 추가 상황 파악이 어렵다는 연락을 받고 상황을 종료했다.

이들 기관은 이씨가 참변을 당한 뒤에도 사건을 은폐하기에 급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안보실은 22일 밤 10시께 이씨 피살 사실을 확인했으나 이튿날 새벽 1시 관계 장관회의 때 보안 유지를 당부하고 대통령 보고에서 이 같은 사실을 제외했다.

당시 서욱 국방부 장관은 그날 새벽 이미 퇴근한 담당 직원을 사무실로 불러 밈스(MIMS·군사정보체계)에 탑재된 군 첩보 관련 보고서 60건을 지우도록 했다.

국정원 역시 첩보 보고서 등 46건의 자료를 무단 삭제했다.

해경은 보안이 해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씨가 피살된 사실을 전달받고도 계속해서 실종자에 대한 수색·구조 작업을 벌였다.

◇ '한자' 쓰인 구명조끼 남한 것으로 단정…'자진월북' 일관대응 지침도
감사원은 이씨의 자진 월북 여부와 시신 소각 여부에 대한 판단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도 지적했다.

먼저 자진 월북 여부에 대해서는 당국이 이씨의 월북 의도가 낮았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보는 분석·검토하지 않았고, 자진 월북 결론과 배치되는 사실은 분석에서 의도적으로 제외했다고 봤다.

안보실은 23일 오전 8시 30분께 이씨의 피살 사실을 문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하고 오전 10시께 관계 장관회의를 개최하면서 자진 월북으로 판단하는 종합 분석 결과를 보고하도록 국방부에 지시했다.

이씨가 해수부 어업지도선의 다른 승선원과 달리 혼자 구명조끼를 착용했고, CCTV 사각지대에서 신발을 벗어놓고 실종됐다는 등의 내용을 언급하면서였다.

국방부는 어업지도선 구명조끼 수량에 이상이 없었고, 이씨가 착용한 구명조끼에 한자(漢字)가 적혀 있어 남한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 등은 무시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안보실이 이 과정에서 다른 기관들에 자진 월북으로 일관되게 대응하도록 하는 방침을 내렸다는 사실이 감사 결과 드러났다.

감사원은 또 국방부가 애초 이씨의 시신이 북한군에 의해 소각됐다고 인정했으나, 안보실 방침에 따라 불확실하다거나 추가 조사가 필요한 것으로 답변하는 등 공식 입장을 변경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방부는 북한으로부터 25일 시신이 아닌 '부유물'을 소각했다는 내용의 대남통지문을 접수한 뒤 입장을 번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 해경 관계자 "해경청장, 월북 배치되는 증거에 '난 안 본 걸로' 발언"
해경의 수사 과정에서도 문제가 발견됐다.

감사원은 해경이 확인되지 않은 증거를 사용하거나 기존 증거의 은폐, 실험 결과의 왜곡,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생활 공개 등을 통해 이씨의 월북을 단정하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고 밝혔다.

배에 남겨진 슬리퍼가 이씨의 것이었다거나 꽃게 구매 알선을 하던 이씨가 구매 대금을 도박 자금으로 탕진했다는 등 해경이 발표한 월북 동기는 확인되지 않거나 근거 없는 내용으로 파악됐다.

감사원 조사에서 해경 관계자는 당시 청장이 월북 정황과 배치되는 핵심 증거와 관련, "나는 안 본 걸로 할게"라는 발언을 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해경은 또 이씨의 발견 지점이 실종 지점으로부터 북서쪽인 데 반해 국립해양조사원 등의 표류 예측 결과는 남서쪽으로 나온 데 대해 이씨가 '인위적 노력'으로 자진 월북했다고 결론 내렸다.

자연 표류해 북한 해역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 결과는 제외해달라고 요구했으며, 더미 실험, 수영실험 결과 등도 왜곡했다.

이 밖에 해경은 범죄 심리 전문가 등 7명 중 2명만 월북 가능성을 언급했는데도 이씨가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 도피를 위해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결론을 발표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이번 감사는 국방부와 해경이 지난 6월 16일 기존 발표를 뒤집고 이 씨의 월북을 인정할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함에 따라 9개 기관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특별조사국 인력 등 18명이 감사에 투입됐다.

감사원은 보도자료에서 "감사 결과에 대해 이른 시일 안에 감사위원회 의결 등을 거쳐 관련 공무원에 대한 엄중 문책 등의 조치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감사원 '서해피살 은폐·왜곡' 서훈 박지원 서욱 등 檢수사의뢰(종합)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