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시중금리가 뛰면서 지난달 은행의 수신 잔액이 2245조4000억원으로 한 달 새 36조4000억원 늘었다는 소식이다. 이 중 정기예금이 32조5000억원 급증했다. 2002년 1월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 증가 폭이다. 반면 자산운용사 수신은 같은 기간 12조4000억원 감소했다. 상대적 고위험 자산에 투자했던 여윳돈을 예·적금으로 옮기는 ‘역머니무브’가 빨라지는 모습이다.

이처럼 은행으로 돈이 빠져나가면서 투자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시장에는 찬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달 회사채 발행 규모는 5조3440억원으로 작년 동기보다 37.1% 줄었다. 자본시장에서 직접 자금조달이 어려워진 기업은 고금리를 무릅쓰고 은행을 찾고 있다. 지난달 대기업 은행 대출이 4조7000억원이나 늘어난 배경이다. 하지만 신용도가 낮은 기업은 자금경색 위험에 내몰리고 있다.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진 데다 은행 문턱이 높아져 금리를 훨씬 높게 줘도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은 탓이다. 고환율, 고금리와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여파로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한계기업(이자보상배율 1 미만 기업)이 5개 중 한 개꼴로 늘어난 상황이어서 위기감이 높다. 더욱이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이 유력한 상황이다. 시중자금이 은행으로 몰리는 역머니무브 현상이 더욱 가속화하고 자본시장은 말라갈 게 뻔하다.

자본시장이 얼어붙으면 한계기업을 필두로 ‘돈맥경화’가 심화하고 부도율이 치솟을 수 있다. 이는 금융권의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상기업도 운영자금 조달뿐 아니라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투자와 인수합병(M&A) 길이 막힌다. 자본시장 기능을 살려야 하는 이유다.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를 확충해 서둘러 재가동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채안펀드는 회사채 인수를 통해 일시적 자금난을 겪는 기업에 유동성을 선제적으로 공급하는 것은 물론 채권시장의 실세금리를 끌어내리는 역할도 할 수 있다. 코로나 사태 초기 조성한 채안펀드 여유 재원이 1조6000억원가량 남아 있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이런 위기 상황에 기업 지원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없는 것도 문제다. 기획재정부는 세제와 거시대책, 산업통상자원부는 통상 문제 대응, 금융위원회는 금융에만 각각 집중하는 탓에 산업과 금융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범정부 차원에서 기업 구조조정을 돕고 활력을 되살리는 종합 지원체계 가동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