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학생들 사이에서 '창업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이후 배달의 민족, 쿠팡, 요기요, 비바리퍼블리카(토스) 등 모바일 플랫폼 스타트업이 잇따라 설립되면서입니다. 하지만 1997년 벤처기업육성특별법 제정으로 벤처투자가 본격화되면서 지금의 스타트업 생태계 토양을 마련했습니다. 한경 긱스(Geeks)가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가 성장하면서 생긴 ‘한국 스타트업 인맥 지도’ 2탄으로 벤처캐피털(VC) 업계의 파워 인맥을 소개합니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벤처캐피털(VC) 업계 파워 인맥의 두 축은 소프트뱅크벤처스아시아와 KAIST가 꼽힌다. 스타트업이 투자 라운드를 돌 때 VC 서너 곳이 함께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함께 일해봤거나 공부했던 인연이 신뢰를 쌓는 데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창업 생태계 일군 소프트뱅크벤처스

2000년 설립된 소프트뱅크벤처스는 오랜 업력만큼이나 국내 VC 업계에서 막강한 인맥을 자랑한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문규학 당시 소브트뱅크벤처스코리아 부사장(현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매니징 파트너)이 주축이 되어 만들었다. 문 부사장의 '절친'이었던 김장욱 현 이마트24 대표도 소프트뱅크벤처스 설립 초기 부사장으로 2년간 활약했다.

설립 때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국내 벤처투자 업계는 그야말로 '암흑기'였다. 문규학 당시 부사장은 대학마다 강연을 돌며 대학생들의 창업 정신을 일깨우며 지금의 스타트업 생태계의 씨앗을 뿌렸다. 2010년대 스마트폰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며 국내 창업 생태계가 활기를 띠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경험을 쌓은 '소뱅맨'들이 VC 업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도 2019년 소프트뱅크벤처스아시아로 이름을 바꾸고 중국과 동남아 시장까지 투자 보폭을 넓혔다.

2000년 설립 초기 심사역으로는 강동석 현 소프트뱅크벤처스 부사장과 신세계 계열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의 문성욱 대표 두 명뿐이었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문 대표는 신세계그룹 정유경 백화점 부문 총괄 사장의 남편이다. 그는 시그나이트파트너스 설립 과정에서 소프트뱅크벤처스 출신인 임정민 전 500스타트업코리아 대표파트너를 투자총괄 상무로 영입했다.

임정민 상무는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에서 심사역으로 지낸 이후, 2015년부터 구글의 글로벌창업지원팀 산하에 있는 구글캠퍼스 서울을 총괄했다. 2018년 500스타트업코리아 대표 파트너를 거쳐 시그나이트파트너스에 합류했다.
스타트업 생태계 성장을 이끈 소프트뱅크 출신 인맥. 왼쪽 윗줄부터 이강준 두나무앤파트너스 대표, 문성욱 시그나이트파트너스 대표, 임정민 시그나이트파트너스 상무, 문규학 비전펀드 매니징파트너, 정지우 블랭크코퍼레이션 부사장, 유승운 스톤브릿지 대표, 김동환 하나벤처스 대표
스타트업 생태계 성장을 이끈 소프트뱅크 출신 인맥. 왼쪽 윗줄부터 이강준 두나무앤파트너스 대표, 문성욱 시그나이트파트너스 대표, 임정민 시그나이트파트너스 상무, 문규학 비전펀드 매니징파트너, 정지우 블랭크코퍼레이션 부사장, 유승운 스톤브릿지 대표, 김동환 하나벤처스 대표
임지훈 전 카카오 대표 역시 소프트뱅크벤처스 출신이다. 2007년 소프트뱅크벤처스에 합류한 임 전 대표는 애니팡을 만든 선데이토즈를 발굴한 '스타 심사역'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후 김범수 카카오 의장의 제안으로 2012년 카카오벤처스의 전신인 케이큐브벤처스를 설립하고 두나무에 초기 투자했다.

유승운 스톤브릿지벤처스 대표도 옛 CJ창업투자를 거쳐 2002년부터 7년 가까이 소프트뱅크벤처스에서 수석심사역으로 활약했다. 이후 투자 부티크인 솔마인 유한회사를 거쳐 2015년부터는 임지훈 전 대표를 이어 케이큐브벤처스를 이끌었으며, 2019년부터 스톤브릿지벤처스 대표를 맡고 있다.

두나무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인 두나무앤파트너스의 이강준 대표와 김경림 파트너도 소프트뱅크벤처스 출신이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이강준 대표는 맥킨지에서 컨설턴트로 경험을 쌓고, 유학 기간을 포함해 2003년부터 2015년까지 소프트뱅크벤처스에서 심사역으로 일했다. 티몬과 두나무를 발굴한 것을 계기로 이후 티몬에서 여행 사업을 이끌었으며, 2018년 두나무앤파트너스 설립을 주도했다.

2018년 하나금융지주의 CVC인 하나벤처스 출범 때에도 소프트뱅크벤처스 출신 김동환 대표가 영입됐다. 김 대표는 미국 시카고대 경영학석사를 받았으며 신한투자증권(옛 신한금융투자), 골드만삭스 등 투자은행에서 경험을 쌓았다. 그는 2016년 코그니티브인베스트먼트 설립 멤버로 참여하면서 소프트뱅크벤처스를 떠났다.

이밖에 모바일 게임업체 모비릭스의 CVC인 모비릭스파트너스를 이끌고 있는 이연구 대표, 신동석 어센도벤처스 공동대표와 무신사파트너스의 손구호 전 대표도 '소뱅맨'이다.

스타트업 업계로 간 소뱅 출신으로는 정지우 블랭크코퍼레이션 최고전략책임자(CSO)가 대표적이다. 소프트뱅크벤처스에서 투자 심사역으로 수년간 소통해오다가 남대광 블랭크코퍼레이션 대표로부터 영입된 경우다.

170명 파워 인맥 KAIST

스타트업 생태계 성장을 이끈 KAIST VC 모임 인맥. 왼쪽 윗줄부터 이용관 블루포인트 대표, 임형규 인터베스트 부사장, 류중희 퓨처플레이 대표, 박하진 HB인베스트먼트 대표,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 강석흔 본엔젤스벤처 대표, 제현주 인비저닝파트너스 대표
스타트업 생태계 성장을 이끈 KAIST VC 모임 인맥. 왼쪽 윗줄부터 이용관 블루포인트 대표, 임형규 인터베스트 부사장, 류중희 퓨처플레이 대표, 박하진 HB인베스트먼트 대표,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 강석흔 본엔젤스벤처 대표, 제현주 인비저닝파트너스 대표
VC 업계엔 최대 인맥은 KAIST 출신 벤처캐피털리스트 모임이다. 학,석,박사를 가리지 않고 170여 명이 소속된 이 모임은 박하진 HB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주도해 이끌고 있다. 박 대표는 KAIST 경영정책학 학사와 경영공학 석사 학위를 갖고 있다.

식사나 골프 모임 등을 통해 주로 친목을 다지는 자리다. 최근 2년간은 코로나19 여파로 오프라인 모임을 거의 열지 않았다가 올해부터 다시 모이고 있다. 슬랙을 통해 온라인으로도 활발히 소통 중이다.

회원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박 대표 이전엔 임형규 인터베스트 부사장, 이강수 컴퍼니케이파트너스 투자부문 대표 등이 회장직을 맡았다. 임 부사장은 산업공학 학사와 경영과학 석사 출신, 이 대표는 기계공학 석사 출신이다.

현재 임원진으로는 박 대표를 비롯해, 임정민 시그나이트파트너스 상무, 최형규 데브시스터즈벤처스 대표, 신현준 인터베스트 상무, 배준성 롯데벤처스 상무 등이 있다. 또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 이용관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대표, 김판건 미래과학기술지주 대표, 류중희 퓨처플레이 대표, 송인애·강석흔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 대표도 모임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김명기 LSK인베스트먼트 대표, 유주현 포스텍홀딩스 대표, 안근영 LB인베스트먼트 부사장, 제현주 인비저닝파트너스 대표, 윤영민 토니인베스트먼트 대표, 변준영 컴퍼니케이 부사장, 이연구 모비릭스파트너스 대표, 이석재 원익투자파트너스 전무 등도 모임에 자주 참석하는 인물들로 알려져 있다.

회장인 박하진 대표는 "모임에 자주 참석하는 주니어급 심사역들도 많다"며 "모이면 일 얘기를 하기보단 웃고 떠들며 편안한 분위기로 다 같이 즐기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가장 주목받는 1984년생 VC 심사역

벤처캐피털 업계 84년생 황금인맥을 형성하는 오지성 뮤렉스파트너스 부사장, 변준영 컴퍼니케이 부사장, 손호준 스톤브릿지벤처스 부사장, 김태규 에이벤처스 부사장 (왼쪽 윗줄부터)
벤처캐피털 업계 84년생 황금인맥을 형성하는 오지성 뮤렉스파트너스 부사장, 변준영 컴퍼니케이 부사장, 손호준 스톤브릿지벤처스 부사장, 김태규 에이벤처스 부사장 (왼쪽 윗줄부터)
스타 심사역들 사이에선 나이별로 소규모 모임이 형성돼 있다. 공식적인 모임은 아니지만 VC 업계의 '황금 인맥'으로 불린다.

대표적인 게 1984년생 심사역들이다. 손호준 스톤브릿지벤처스 이사, 변준영 컴퍼니케이 부사장, 김태규 에이벤처스 부사장, 오지성 뮤렉스파트너스 부사장 등이 있다. 손 이사, 변 부사장, 김 부사장은 VC 업계에 입문한 시점도 같다. 세 사람은 2012년 VC 협회의 신규 인력 양성 과정에서 만났다.

손호준 이사는 배달의민족, 직방, 쏘카, 지그재그, 스타일쉐어 등을 초기에 발굴해낸 인물이다.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를 졸업한 손 이사는 씨티은행을 거쳐 2012년 스톤브릿지벤처스에 합류했다. 다수의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을 떡잎부터 알아보고 베팅한 성과를 인정받아 2019년 회사 최연소 이사로 승진하기도 했다.

변준영 부사장은 직방을 비롯해, 리디, 뤼이드, 샌드박스네트워크, 원티드랩에 투자한 심사역이다. 지난해 약 6억원의 고액 연봉을 받은 '스타 심사역'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KAIST 모임에도 소속돼 있는 그는 솔본인베스트먼트를 거쳐 2013년부터 컴퍼니케이에 몸담고 있다. 특히 손 이사와 변 부사장은 직방과 차이코퍼레이션 등에 함께 투자하기도 했다.

또 김태규 에이벤처스 부사장은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로 커리어를 시작해 미래에셋자산운용, 대성창업투자, DS자산운용 등을 거쳤다. 2018년 조창래 대표와 함께 에이벤처스를 공동 창업했다. 컬리, 와디즈, 크래프톤, 카카오게임즈 등 굵직한 회사들에 투자한 바 있다.

오지성 뮤렉스파트너스 부사장도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스톤브릿지벤처스를 거쳐 2018년 뮤렉스파트너스를 창업했다.

허란/김종우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