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세 번째)이 29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55차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에 참석해 라닐 위크레마싱헤 스리랑카 대통령(두 번째)으로부터 차기 개최국임을 알리는 배턴을 전달받았다. 차기 ADB 연차총회는 내년 5월 인천 송도에서 개최된다.
한 경제부처 고위 관료는 지난 7월 기획재정부 관계자를 만나 “원·달러 환율이 이러다 1350원을 뚫겠다.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주문했다. 당시 환율이 13년 만에 처음으로 1300원을 돌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재부 측은 “외환시장을 잘 관리하고 있으니 그럴 일은 없다”는 답변을 내놓았다고 한다. 이후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29일 1350원을 넘어선 데 이어 이달 22일에는 1400원마저 돌파했다.윤석열 정부 경제팀이 경제 위기 대응에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 등 ‘3고(高) 파고’ 속에서 안이한 인식을 보이거나 뒷북 대응에 나서는가 하면, 부처 간에 혼선을 빚는 모습을 드러내면서다. 일각에서 ‘제2 아시아 외환위기’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에 일사불란하지 못한 모습으로 시장의 혼란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율 1400원 육박하자 뒤늦은 개입27일 원·달러 환율은 서울 외환시장에서 3원30전 내린 1428원에 출발해 장중 한때 다시 1430원을 돌파했다. 9원80전 내린 1421원50전에 마감했지만 시장에서는 고점 확인이 아닌 ‘숨 고르기’라는 평가가 나온다.외환당국은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뒷북 대응’을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동안 외환당국 수장들은 환율 상승과 관련해 “다른 통화와 비교해 덜 올랐다”(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거나 “위기 징후는 아니다”(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는 반응을 보였다. 시장을 안심시키려는 취지였지만 시장에선 환율 상승을 용인하는 신호로 해석했다.그러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에 육박하자 외환당국은 부랴부랴 강도 높은 개입에 나섰다. 지난 15일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주로 사용하던 이른바 ‘도시락 폭탄’(거래 물량이 적은 점심시간에 대규모 달러 매도) 전략으로 7억달러 이상을 외환시장에서 매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후 환율은 1400원을 넘어섰고, 일단 ‘빅 피겨’(큰 자릿수)를 깨고 나자 26일 하루에만 22원 급등하기도 했다.이런 상황에서도 고환율에 대응한 기준금리 인상과 관련해 한은과 기재부 사이에서는 이견이 표출되는 듯한 모습이다. 추 부총리는 25일 방송사 인터뷰에서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가계부채 부담이 커지는 문제도 있다”고 했다. 한은에 ‘빅스텝 자제’를 우회적으로 요구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외환당국은 한·미 통화스와프에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총재는 전날 국회에서 “전제조건이 맞지 않는데 체결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물가·무역적자 대응도 부실 논란무역수지, 물가와 관련해서도 경제팀의 인식이나 대응이 안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한덕수 국무총리는 올해 7월까지 누적 무역적자가 150억달러에 달한 것과 관련해 “한 나라의 외화 수입과 지출의 차이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통계는 무역수지가 아니라 경상수지”라며 “상반기 경상수지는 약 247억달러 흑자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국회에서는 “경상수지, 정확히는 상품수지를 봐야 한다”고 했다.그러나 원자재 등 수입가격 상승으로 7월 상품수지는 10년3개월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한은은 7일 국제수지 잠정통계를 발표하면서 8월 무역수지가 큰 폭의 적자를 나타내 경상수지도 월간 기준으로 적자전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정부의 10월 물가 정점론도 위협받고 있다. 환율이 1400원대를 넘어서면서다. 이 총재는 26일 국회에서 “예상보다 유가가 빨리 떨어지는 반면 환율이 절하되고 있다”며 물가 정점이 늦춰질 가능성을 제기했다.정부의 일부 물가 대응이 안이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21일 기자간담회에서 “저녁에 라이트 켜고 골프 치는 게 현재 에너지 상황에서 적절한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지금은 한은이 비상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를 올려도 이상하지 않은 위기 상황”이라며 “윤석열 정부 경제팀이 보다 위기의식을 갖고 현 경제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임도원/도병욱 기자 van7691@hankyung.com
정부가 환율 방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23일 국민연금과 외환당국이 10월 중 1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기로 했다고 밝힌 데 이어 25일엔 조선업체의 선물환 매도를 지원해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 상승 압력을 낮추는 방안을 내놨다. 특히 조선업체의 선물환 매도 물량을 정부가 직접 매입하는 방안까지 꺼냈다. 민간의 해외 금융자산을 국내로 되돌리기 위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세계적인 강(强)달러 흐름에 따라 환율 상승세를 꺾진 못하더라도 일방적인 환율 쏠림 현상은 막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분석된다. 선물환 매도 지원해 80억달러 추가 공급선물환 매도는 조선업체들이 환손실을 막기 위해 자주 쓰는 방식이다. 조선사는 선박을 수주해도 실제 대금은 2~3년에 나눠 받는다. 조선사들은 이 기간 환율 하락으로 손해를 보는 걸 피하기 위해 달러를 미리 은행에 매도(선물환 매도)한다. 예컨대 수주 당시 원·달러 환율이 1200원이고 대금 수령 시 환율이 1180원이면 달러당 20원의 손실을 보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만기 때 달러당 1199원(수수료 1원 가정)을 받는 조건으로 은행과 미리 신용거래를 하는 식이다.조선사로부터 선물환을 사들인 은행은 외환 포지션을 중립으로 유지하기 위해 같은 규모의 달러를 외화자금시장에서 빌린 뒤 이를 외환시장에 매도한다. 즉 조선사 수주가 늘면 국내 외환시장에 달러 공급이 늘어 환율 하락 요인으로 작용한다.문제는 최근 선박 수주 확대로 조선업체의 선물환 매도가 증가하는 가운데 환율까지 뛰면서 기존 선물환 거래의 원화 환산 금액이 늘었고, 그 결과 은행이 허용한 조선사의 신용한도가 꽉 찬 사례가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조선사는 선물환을 제때 매도하지 못해 환위험이 커졌고 외환시장에선 달러 매도 압력이 줄었다. 정부가 조선사 선물환 매도 지원에 나선 이유다.정부 대책은 3단계로 구성된다. 우선 금융당국을 통해 기존 거래은행의 선물환 매입 한도 확대를 유도한다. 만약 기존 거래은행만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수출입은행이 조선사에 대한 신용한도를 늘려 조선사의 선물환 매도 물량을 흡수한다. 그래도 안 될 경우엔 최종적으로 외환당국이 외국환평형기금을 동원해 선물환을 직접 매입할 방침이다. 외환당국은 선물환을 매입한 뒤 이를 은행에 매도하는데, 이 경우 은행은 조선업체로부터 직접 선물환을 매입하는 게 아니어서 조선사의 신용한도가 초과하는 문제를 피할 수 있다. 외환보유액도 줄어들지 않는다. 기획재정부는 이를 통해 연말까지 약 80억달러 규모의 선물환 매도 물량이 외환시장에 공급될 것으로 추산했다. 해외 금융자산 환류 방안도 검토정부는 2조1000억달러 규모의 민간 해외 금융자산을 국내로 되돌리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민간 자본이 해외로 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경제주체가 해외에 투자한 자산을 국내로 가져올 경우 세제 등 인센티브를 줄 수 있다는 취지다. 지난 2분기 말 기준 대외금융자산은 2조1235억달러이고, 여기에서 대외금융부채를 제외한 순대외금융자산만 해도 7441억달러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고, 대외금융자산 환류 역시 아이디어 차원에서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KBS에 출연해 “최근 원화가 다른 통화보다 더 빠르게 약세를 보이는 쏠림 현상이 나타나 시장 안정 조치를 하고 있고, 여러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외환보유액을 활용한 시장개입과 관련해선 “외환보유액은 금고에 쌓아두라고 있는 게 아니라 이럴 때 시장 안정 조치를 하라고 있는 자금”이라며 “외환보유액이 아직 많기 때문에 이를 활용해 적절한 시장 안정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한·미 통화스와프에 대해선 “분명 환율 등에 도움이 되겠지만 국제기구 등에서는 당장 이를 가동해야 할 상황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며 “미국 역시 상황을 좀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라고 했다.■ 수출업체 선물환 매도수출업체들이 환율 하락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일정 기간 뒤 받을 달러를 일정한 환율로 고정해 은행에 파는 거래. 수주한 뒤 2~3년 이후에야 대금을 다 받을 수 있는 조선업체들이 주로 이용한다. 은행은 조선사로부터 선물환을 매입하면 같은 규모의 현물환을 외화자금시장에서 빌려 외환시장에 판다. 이 과정에서 외환시장에 달러 매물이 늘어 환율 하락 압력이 커진다.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물가를 잡고 환율을 안정시키려면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가계부채 부담이 커지는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미국의 3연속 ‘자이언트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 이후 환율이 크게 오르며 한국도 또다시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을 해야 한다는 지적에 속도 조절 필요성을 제기한 것으로 해석된다.추 부총리는 이날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너무 커지면 외환시장과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도 “그걸 가파르게 쫓아가자니 국내 경기 문제나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여러 차입자가 금리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세계 최고 수준인 가계부채에 대해선 “증가 속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6배”라며 “굉장히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했다.추 부총리는 “금리 인상은 한국은행의 고유 권한”이라면서도 “환율이나 내외 금리차, 가계부채, 경기 등 복합적 변수 속에서 복잡한 방정식을 잘 풀어가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이 같은 추 부총리의 발언은 빅스텝 등 과도한 금리 인상이 다양한 부작용을 동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앞서 “미국의 최종 금리(연 3.4%→연 4.4%)가 전제조건에서 벗어났다”며 빅스텝 가능성을 시사한 이창용 한은 총재의 발언과 온도차가 있다.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대해선 “이르면 9월, 늦어도 10월엔 소비자물가가 정점에 이르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 현재도 유효하다”며 “국제 유가와 국제 원자재 가격이 하향 추세를 나타내고 있고, 장마 태풍을 거치며 (오른) 농산물 가격도 안정될 듯하다”고 설명했다.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