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살 터울 친구' 김훈 "말하기 어려운 심정"…'만다라', '국수' 등 대표작
이념적 상처·구도·우리말 문체…문학적 소신 지킨 김성동 작가
"몇 분 전에 소식을 들었어요.

지금 심정이 안정이 안 돼서 뭐라 말하기가 어렵네요.

"
소설가 김훈(74)은 25일 별세한 김성동 작가의 부고에 황망함을 감추지 못하며 수화기 너머로 말끝을 흐렸다.

두 작가는 한 살 터울이지만 한때는 인근에서 살며 격의 없는 친구로 지냈다.

이날 세상을 떠난 소설가 김성동은 한국 근현대사의 이데올로기적 상처와 불교적 구도를 자신의 문학적 원천으로 삼은 작가다.

아버지가 남로당 활동을 하다가 처형당한 아픈 가족사와 연좌제로 인해 고교를 중퇴하고 10년가량 승려 생활을 했던 이력이 그의 작품 세계를 이끌었다.

출가한 뒤 지효(智曉) 대선사 상좌(上佐)로 있던 그는 1975년 '주간종교' 종교소설 현상 공모에 단편 '목탁조'(木鐸鳥)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목탁조'가 발표되자 조계종은 '불교계를 악의적으로 비방하고 승려들을 모독했다'며 만들지도 않았던 승적을 박탈하기도 했다.

1976년 환속한 그는 1978년 '한국문학'에 중편 '만다라'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듬해 장편으로 개작한 '만다라'는 한국 불교 소설의 백미로 평가받았다.

20대의 자전적인 경험이 스며든 이 작품은 수도승 법운의 수행과 방황을 통해 한국 사회의 병폐와 세속적인 불교를 비판한 작품이다.

1970년대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과 함께 주목받았으며 1981년 임권택 감독이 배우 안성기를 주연으로 한 동명 영화로도 제작했다.

고인은 '엄마와 개구리', '기숙의 땅', '먼산', '잔월', '오막살이 집 한 채' 등의 단편과 '피안의 새', '황야의 새', '왕장승 딸' 등 중편, '집'과 '길' 등 장편을 잇달아 발표했다.

1981년 첫 소설집 '피안의 새'에서 자신의 종교적 경험을 토대로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면서 한국전쟁이 남긴 아픔을 다뤘다.

수필집 '부치지 않은 편지'(1987), '떠도는 넋은 언제 잠드는가'(1989) 등을 펴냈다.

1983년 아버지와 그 시대의 삶을 바탕으로 이념 갈등을 그린 '풍적'을 '문예중앙'에 연재하다가 내용이 문제가 돼 중단하기도 했다.

1991년에는 문화일보 창간호에 장편 '국수'를 연재했다.

당시 연재 중단으로 미완이던 이 작품은 27년 만인 2018년 6권으로 완간됐다.

'국수'는 임오군변(1882)과 갑신정변(1884) 무렵부터 동학농민운동(1894) 전야까지 각 분야 예인과 인걸이 한 시대를 풍미하는 이야기를 유장한 우리말로 풀어썼다.

완간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올여름 휴가에서 읽은 책으로 소개돼 관심을 끌기도 했다.

당시 완간 기념 기자회견에서 고인은 "'국수'는 손 수(手)자가 말하듯이 재주가 뛰어난 자에게 바치는 민중의 꽃다발"이라며 "바둑을 중요한 모티브로 끌고 가는 게 있지만, 각계각층의 이야기"라고 작품을 설명했다.

특히 고인은 "우리 말이 한(漢)독, 왜독, 양독에 짓밟혀서 다 사라져버렸다"며 이 작품을 통해 이 땅에서 사라진 우리 말을 되살리려 애썼다.

1~5권에 쓰인 조선말을 따로 정리해 6권에 해당하는 '국수사전-아름다운 조선말'을 함께 펴냈다.

'꿈'은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불교신문'에 연재한 소설로 젊은 승려 능현과 여대생 희남의 꿈결같이 애틋한 사랑과 구도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2019년에는 생전 마지막 소설집 '민들레 꽃반지'를 출간했다.

해방 공간에서 좌익운동에 투신한 부모와 연좌제에 시달린 가족사를 그린 자전적 단편 세 편을 묶었다.

이중 '고추잠자리'는 충남에서 좌익 활동을 하다가 한국전쟁 이후 보도연맹원들과 함께 학살당한 선친을 그리는 '망부가'다.

'멧새 한 마리'에선 좌익운동과 여성해방운동을 동시에 펼친 모친의 지난한 삶을 돌아봤다.

'민들레 꽃반지'는 '빨갱이 집안'이란 낙인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주인공과 학살당한 남편을 잊지 못하는 모친의 힘든 현실을 보여주며 연좌제의 폭력성을 고발했다.

문학평론가이자 '국수'를 출간했던 솔출판사 임우기 대표는 "유가적 전통, 불교적 세계를 통합하며 자신의 문학관을 소신 있게 지킨 작가"라며 "특히 김성동의 문장은 조선말인 한글 창제의 원리에 가장 가까웠다.

동료 작가들이 그의 문장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라고 회고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