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징용기업 재단 출연하더라도 어떤 명목일지도 관심
고위당국자 "정부 해결안 발표, 타깃 시점 없어…과정 성숙해지면"
징용해법, 한일 민간재원에 무게…日기업 출연여부·사과 쟁점(종합)
정부가 국내 전문가들과 네 차례 민관협의회를 통해 강제징용 배상 문제 해결을 위한 방향성을 어느 정도 도출하면서 앞으로 한일 간 교섭이 어떻게 이뤄질지 관심이 쏠린다.

특히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대신 이행하기 위한 재원 조성에 일본 피고 기업이 참여할지, 참여한다면 어떤 명분으로 출연금을 낼지가 한일간 교섭의 핵심 쟁점이 되리라는 관측이 7일 나온다.

마지막 민관협의회였던 지난 5일 4차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대위변제(제3자에 의한 변제)를 하거나 일본 피고 기업의 채무를 인수하기 위해 한국 정부 예산을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한국 정부는 민관협의회 논의 결과를 토대로 해결안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정부 예산을 통한 변제가 사실상 배제됐기 때문에 한일 기업 등 순수 민간이 재원을 조성해 피해자들에게 지급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재원이 마련되면 특정 재단이나 기금이 주체가 돼 대위변제나 채무인수 등의 방식으로 배상 판결을 이행하는 방안이 추진될 수 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외신기자들과 만나 "정부 예산을 사용하는 명분과 정당성이 없어 크게 무게를 두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새 기금이나 재단을 신설하는 데 절차적으로 시간이 걸리면 기존 재단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라며 "정부의 안으로 채택한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고, 민관협에서 다양한 방안 중 하나로 표명됐고 눈여겨 검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4차 민관협의회 당시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2014년 설립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활용하는 방안이 거론된 바 있다.

결국 이 재단에 일본 피고 기업이 출연금을 낼지가 일본 쪽 조치의 핵심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피고 기업의 참여는 피해자 측이 그동안 제시해 온 '마지노선'이다.

직접 배상 대신 대위변제 등 방식이 동원되더라도 기금 조성에는 피고 기업이 참여해야 한다는 것으로, 피고 기업의 책임 구현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피해자 측은 인식하고 있다.

일본 피고 기업이 자금을 출연한다 해도 쟁점은 또 있다.

과연 어떤 명목으로 돈을 낼지다.

일본 측은 강제동원 문제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대법원의 배상 판결 이행을 거부해 왔다.

따라서 피고 기업이 출연금을 내더라도 배상이라는 인상은 최대한 피하려고 할 것으로 보인다.

배상 성격이 옅어질수록 일본 기업의 참여를 끌어낼 가능성은 높지만 반대로 피해자들을 설득할 부담은 커진다.

이 사이에서 절묘한 '중간점'을 찾는 것이 한국 정부의 과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한 한일관계 전문가는 "일본 기업들이 배상 명목으로 기여를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여를 한다면) 한일관계 개선이나 미래를 위해서라는 명목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또 하나의 핵심 쟁점은 일본 기업의 사과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전날 "일본의 사과와 관련해 (민관협의회) 참석자들은 피해자들이 가장 원하는 요소 중 하나이므로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 대해 논의했다"고 언급해 사과 문제가 중요 쟁점임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사과하더라도 누가 어떤 계기에, 어떤 형태와 표현으로 할지 등이 모두 한일 간 교섭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일본 기업의 재원 조성 참여 방식과 사실상 연계돼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

피해자 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는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당시 강제적인 노동을 시켰고 임금도 지급하지 않았고 혹독한 노동 조건 속에 여러분(피해자)들을 노출시켰다는 (피고 기업의) 의사 표현이 있다면 생존해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 분들이 아마 그 사과에 대해서 평가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런 쟁점들에 대해 일본이 구체적인 태도 변화를 보인다는 기미는 아직 없어 향후 교섭을 낙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피해자가 요구하는 최대치의 호응을 일본이 보여주기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며 "그런 맥락에서 해법이 마련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한일간 협의는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국내적으로 '외연을 확대한' 형태의 협의체 등을 통해 의견 수렴을 계속하면서 다양한 외교적 경로로 일본의 의사 타진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피해자를 포함한 국민들의 공감대, 일본과의 협의 과정에서 일측의 호응 등이 최종적인 결과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런 점에 중점을 두고 계속 고민하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해결방안을 언제 발표하겠다는 "타깃 시점은 없다"며 위와 같은 과정이 '성숙해지면' 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달 유엔총회에서 한일 정상간 만남이 성사된다면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논의 진전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이 당국자는 "대개 정상회담은 큰 그림이나 원칙적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현안에 대한 구체적 협의에 적절한 계기는 아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는 강제징용을 비롯한 한일 간의 여러 현안을 "시기에 맞게 해결하되, 전체적인 한일관계 그림 속에 해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