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하르츠식' 노동개혁, 정권 명운 걸 준비 됐나
미국 포드자동차가 전기차 분야 투자 확대를 위해 3000명의 직원을 정리해고할 것이라고 한다. 해고 대상 중 2000명은 정규직, 1000명은 하청업체가 파견 형식으로 고용한 직원이다. 한국에서라면 난리가 날 일이다. 시위와 파업이 벌어지고, 부당해고 취소 소송이 봇물을 이룰 것이다. 우리 근로기준법은 경영 악화 방지를 위한 사업의 양도, 인수, 합병 등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는 경우로 해고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업으로선 한 번 채용한 사람을 여간해선 해고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경기나 경영환경이 나빠졌을 때를 생각하면 인력 수요가 있어도 신규 채용을 꺼리게 된다. 결국 기업들은 해고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핵심 공정만 남기고 생산 과정의 많은 부분을 도급화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해왔다. 원청과 하청, 대기업과 정규직 중심의 1차 노동시장과 중소기업·비정규직 중심의 2차 노동시장으로 이중구조가 생겨난 이유다.

서울 청담동 하이트진로 본사 옥상에서 열흘 넘게 점거 농성 중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하이트진로 지부 조합원들의 파업도 이런 이중구조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한다. 화물차 기사인 이들이 본사를 점거한 것은 자신들과 운송 계약을 한 물류회사(수양물류)와의 협상에 진전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양물류는 하이트진로가 100% 출자한 자회사다. 사실상의 사용자인 본사가 협상에 나서라는 것이 이들의 요구다. 하지만 하이트진로는 계약당사자가 아닌데 협상에 개입하면 하도급법 위반이라는 입장이다. 노사협상이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파업으로 이어지는 이유다.
[토요칼럼] '하르츠식' 노동개혁, 정권 명운 걸 준비 됐나
문제는 법으로 보장된 파업의 범위를 넘어서는 불법적인 점거·시위·농성이다. 하이트진로뿐만 아니라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도 마찬가지였다. 원청은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청구 소송으로 대응하고, 이는 또 다른 노사 쟁점이 된다. 노조는 “사회적 관심을 끌려면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하지만 사측은 “불법은 용인할 수 없다”며 ‘법대로’를 주장한다. 그야말로 끝없는 평행선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법과 원칙의 일관된 적용, 노동시장 양극화(이중구조) 개선,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노동유연성 강화와 노동법 개편 등 여러 과제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노동개혁의 방편으로서 2000년대 초 독일의 집권 사민당이 추진했던 ‘하르츠 개혁’을 언급했다. 하르츠 개혁은 2002년 폭스바겐의 노무담당 이사였던 피터 하르츠를 비롯한 15명의 전문가 집단인 하르츠위원회가 마련한 노동시장 개혁 방안이다. 당시 독일의 실업자는 500만 명에 육박했고, 고령화로 인한 연금 및 건강보험 지출 증대로 사회보장체계는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합의한 개혁안을 정부가 추진하면서 노사 대타협을 이끌어냈다.

개혁안은 실업수당 수혜 기간을 32개월에서 12개월로 대폭 줄였고, 해고를 보다 쉽게 할 수 있도록 해 노동유연성을 확대했다. 또한 시간제 노동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미니잡(mini job)’ ‘미디잡(midi job)’ 등 노동시간을 짧게 쪼갠 저임금 일자리를 다양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미니잡은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청소부, 보육사, 노인 돌보미 등으로 불법 취업한 이들을 양성화한 것이다. 하르츠 개혁으로 ‘유럽의 병자’라고 불렸던 독일 경제는 되살아났다. 하지만 미니잡, 미디잡 등 불안정한 근로가 늘어나 좋은 일자리 제공에는 실패했고,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악화시켰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노동개혁은 그야말로 복잡한 과제다. 임금체계와 근로시간부터 노동시장의 구조, 노동계에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평가되는 노동 관련법, 관행화된 불법행위에 이르기까지 손을 대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관련된 개인과 집단의 격렬한 논쟁과 다툼은 불을 보듯 뻔하다. 윤 대통령이 ‘사회적 대타협’을 강조했지만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만 허비할 수도 있다. 따라서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다루기보다는 우선순위를 정해 과제를 범주화한 다음 하나씩 해결해가는 것이 나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강력하고 사심 없는 리더십이다. 하르츠 위원장은 2015년 방한 때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부는 개혁을 실현하기 위한 용기가 필요했다. 개혁하지 않으면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개혁을 단행하면 표를 잃어버릴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개혁은 국내에서보다 국외에서 더 많은 찬사를 받았다.” 하르츠 개혁을 추진했던 사민당의 슈뢰더 내각은 지지 기반이 무너져 정권을 잃었지만 기민련의 메르켈 내각이 노동개혁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우리도 그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