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 탈레반 정권 피해 한국 온 아프간 특별기여자 390여명
"1년 전 모든 희망 잃었지만, 지금은 인생 2막 누리고 있어"
3명 중 2명은 미성년…학교서, 유치원서 적응하는 아이들
주민들 "낯설음에 걱정도 많았지만…이젠 이웃으로 지냅니다"

[※편집자 주: 지난해 탈레반의 박해를 피해 한국에 온 아프간 특별기여자 390여 명이 오는 26일 한국살이 1주년을 맞이합니다.

대한민국을 도운 인연으로 이 땅에 온 이들은 이제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이 한국에서 정착하고 있는 모습을 조명하고, 이들의 생활에 불편이나 애로사항은 없는지, 우리 사회가 도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앞으로 늘어날 수 있는 특별 이주민 등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지 등을 짚어본 기획기사 3건을 오늘부터 차례로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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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동안 한국과 겹겹이 쌓인 운명과 인연은 우리 가족이 지금의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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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울라 사헤비(44) 씨는 어렸을 때부터 품어온 의사라는 꿈을 좇아 고향인 아프가니스탄 수도에 있는 카불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치·의대 박사 과정을 밟았다.

2011년에는 인제대 백병원에서 다양한 수술을 집도하는 교육도 받았다.

이후 아프간 최고 수준의 병원으로 손꼽히는 '프랑스 어린이 병원(FMIC)'을 비롯해 바그람 한국 병원 등에서 14년간 치과 전문의로 근무했다.

[아프간특별기여자 1년] ①"잃어버린 희망, 한국서 다시 찾았죠"
아내·자녀 4명과 함께 가정을 꾸려갔던 그에게 위기가 닥친 것은 지난해 8월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국가를 장악하면서부터다.

모국에서 안전을 보장받지 못할 거라는 판단이 선 그는 바그람 병원에서 연을 맺은 한국인 동료에게 도움을 청했다.

카불 공항에서 19시간을 기다린 끝에 우리 공군의 다목적 공중 급유 수송기인 KC-330을 탔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공항을 거쳐 11시간을 날아 2021년 8월 26일 오후 4시께 사헤비 씨의 가족은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그는 2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인생에서 가장 위험하고 긴 여행이었다"며 "불과 1년 전만 해도 모든 희망을 잃어버렸다고 여겼지만, 지금은 한국에서 새로운 인생 2막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 한국살이 1년…사회 곳곳에 뿌리내리는 특별기여자들
약 1년 전 사헤비 씨와 같은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이 탈레반 정권을 피해 한국에 왔다.

이들은 충북 진천과 전남 여수 등에서 5개월간 직업 훈련과 언어·문화 교육을 받았다.

올 초에는 지역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아프간특별기여자 1년] ①"잃어버린 희망, 한국서 다시 찾았죠"
법무부에 따르면 당시 입국한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은 79세대 391명이다.

이 중 일부가 미국으로 출국했거나, 국내에서 자녀가 태어나는 등 변화를 거쳐 18일 기준 76세대 394명이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고 있다.

정착 지역은 울산이 40.4%(159명)로 가장 많다.

이어 경기 34.3%(134명), 인천 21.6%(85명), 충청 4.1%(16명) 순이다.

아프간 시절 직업을 가졌던 이는 76명이다.

구직 중인 11명을 제외하면, 이들 대부분이 우리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거나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사헤비 씨도 경기 화성에 있는 치과용 엑스레이 의료기기 업체인 '바텍'에서 플랫폼 사업팀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아프간특별기여자 1년] ①"잃어버린 희망, 한국서 다시 찾았죠"
그는 "올해 초 여수 해양경찰교육원에서 사회 적응 훈련을 받고 있을 때 한국 정부를 통해 회사에서 '면접을 보고 싶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모국에서의 경력을 살릴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에 최선을 다해 임했다"고 말했다.

1시간이 넘는 면접을 여러 차례 치른 끝에 그는 사회 진출 직후인 2월 7일 바텍에 첫 출근을 했다.

중동 지역 시장 조사를 비롯해 해외 법인과의 소통, 치과 진료 데이터 분석, 관련 소프트웨어 테스트 등이 그가 맡은 일이다.

그는 "치과의와 연구원 업무는 다른 점이 많다"며 "그래도 모국에서 쌓은 치과 전문의로서 경험이 큰 자산이 된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이어 "직장 동료와 영어로 대화하기에 업무에 큰 문제는 없다"면서도 "얼른 한국어를 완벽하게 익혀 더 큰 도움이 되고 싶다"고 웃었다.

◇ 학교에서, 유치원에서 자라나는 아이들
한국 사회 적응은 어른들만의 숙제는 아니다.

특별기여자 394명 가운데 미성년자는 242명(61.4%), 성인은 152명(38.6%)이다.

3명 중 2명 가까이 만 18세 미만의 청소년이라는 의미다.

[아프간특별기여자 1년] ①"잃어버린 희망, 한국서 다시 찾았죠"
사헤비 씨는 "장남은 초등학교에, 다른 아이들은 직장 내 어린이집에 입학했다"며 "한국어는 물론이고 한국 문화와 제도 등을 배우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그는 "자녀 모두 한국에서 초·중·고교를 무사히 마치고 대학을 졸업해 이곳에서 오래 행복하게 일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기 김포에 사는 누룰라 사데키(33) 씨도 "첫째는 초등학교에, 둘째는 유치원에 입학하면서 가족 모두 한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전했다.

얼마 전에 막내아들이 태어나면서 가족의 일상은 더욱 분주해졌다고 한다.

아내가 자녀들의 등굣길을 함께하고, 저녁에는 퇴근한 사데키 씨가 아이들을 돌본다.

세이브더칠드런 아프간 사무소에서 일하던 경력을 살려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에서 일하는 그는 "초반만 하더라도 수업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아이들이 한국어 실력이 부쩍 늘면서 학교생활에 흥미를 갖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장녀는 우리 가족 통역사나 다름없다"며 "나보다 더 한국어를 잘한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이어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소란스러울 때가 많은데 다행히 이웃사촌들이 잘 이해해준다"며 "얼른 한국어 실력을 키워 감사한 마음을 직접 전하고 싶다"고 했다.

◇ 이방인에서 '이웃'으로…"잘 지내봅시다"
1년간 아프간 특별기여자의 입국과 정착 과정 등을 지켜본 우리 사회도 이 같은 변화에 적응해 가는 모습이다.

[아프간특별기여자 1년] ①"잃어버린 희망, 한국서 다시 찾았죠"
울산에 사는 신모(40) 씨는 올 초만 하더라도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에 대한 걱정이 컸다고 한다.

울산 동구에 정착한 아프간 특별기여자의 자녀들이 1학기부터 등교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유치원생 16명, 초등학생 28명, 중학생 19명, 고등학생 22명 등 총 85명에 달했다.

그는 행여나 문화적 차이나 소통 문제 등으로 아이들 간에 다툼이 생길까 걱정이 됐다고 한다.

신 씨는 "학기 초에는 아들을 붙잡고 별일이 없었는지 물어보곤 했다"며 "'생김새도, 먹는 것도 달라 낯설긴 했지만, 좋아하는 축구를 하면서 금방 친해졌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졸업할 때까지 서로 배우고, 의지하면서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충북 진천군 토박이인 70대 이모 씨는 지난해 8월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이 집 근처의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 처음 왔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씨는 "평소에도 집 근처 과수원 등에서 일하는 외국인 계절 근로자를 봐왔기 때문에 이방인이 낯설지는 않았다"면서도 "중동 지역에서, 그것도 수백 명이 한꺼번에 우리 마을을 찾은 것은 처음이라 싱숭생숭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들이 연수원에서만 생활한 탓에 정을 쌓을 기회는 없었지만, 이 씨는 이제 이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한다.

그는 "우리 고향이 한국의 첫인상이었을 텐데 어땠을지 모르겠다"며 "앞으로 살아가면서 '생거진천(生居鎭川·살아서는 진천땅이 좋다는 말)'에서 보냈던 시간이 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프간특별기여자 1년] ①"잃어버린 희망, 한국서 다시 찾았죠"
전문가들은 아프간 특별기여자에 대해 "국제 사회 일원으로서 어려움에 부닥친 이에게 손을 내밀었던 특별한 선행"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조정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어떠한 대가도 없이 특별기를 보내면서까지 적극적으로 인도적 지원에 나섰다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라고 평했다.

조 교수는 "1년이 지난 지금 이들이 잘 정착하고 있는지, 문제는 없는지 찬찬히 살펴봐야 할 때"라며 "앞으로도 이들이 큰 어려움 없이 안착한다면 우리 사회 다양성이 강화된 일종의 선례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