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인터뷰
이상민 현대자산운용 매니저

"테마형 성장주는 얼마 안 가…R&D 기반 성장주는 중장기 유망"
"시총대비 연구개발비 비중(PRR) 높은 종목 주목해야"
"성장성·저평가 여부 두루 살피기 때문에 경기둔화에도 견조"
"연구개발(R&D) 비용에 집중하면 수치로 검증할 수 있는 '찐' 성장주를 골라낼 수 있습니다."

돈 버는 게임(PE2), 메타버스…. 코로나19 이후 매혹적인 스토리로 시장 상승을 이끌었던 성장주들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았다. 스토리를 현실화 한 기업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짜 실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성장주를 골라낼 순 없는 걸까.

이상민 현대자산운용 매니저(사진)는 "기업이 R&D에 얼마나 투자하는지를 지켜보면 내실 있는 성장주를 골라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매니저는 해당 아이디어로 '현대 UNICORN R&D 액티브 상장지수펀드(ETF)'를 기획해 현재 운용 중이다.

▷한국은 성장주의 유효기간이 그리 길지 않은 것 같습니다. R&D에 주목하면 달라지나요?
"작년에 메타버스나 P2E 등 온갖 테마가 주식시장에서 유행했었습니다. 하지만 테마성 성장주가 늘 그렇듯 그 유효기간이 길진 않았습니다. 스토리는 매력적이었지만 의미 있는 아웃풋을 내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투자자들에게 성장주는 매력적입니다. 높은 성장률로 높은 수익률을 내기 때문입니다. R&D 비용은 금액으로 측정할 수 있는 만큼 적당한 가격에 좋은 성장주를 골라낼 수 있는 기준이 됩니다. 지금이야말로 착실하게 미래의 성장을 준비해 나가는 기업에 투자할 적기라고 봅니다."

▷실제 R&D에 많이 투자하는 기업들의 주가 수익률이 높나요?
"대표적인 게 테슬라입니다. 테슬라는 영업손실을 내고 있던 2015~2016년에도 매출액 대비 R&D 비용을 20% 가까이 집행하면서 기술력을 쌓았습니다. 이에 따라 나중에 실적도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높은 수익률을 안겨줬습니다. 국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코스피200 종목 내에서 R&D 비중이 높은 기업 40종목을 대상으로 2015년 이후 현재(6월 말)까지의 수익률을 분석해 보니, 코스피200지수를 150%포인트 앞선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R&D에 투자를 많이 한다는 건 비용이 그만큼 든단 얘기입니다. 초기 수익률은 낮지 않나요?
"두 가지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론 주가수익비율(PER)로 저평가 기업을 골라내듯, 시가총액 대비 R&D 비용을 비교한 PRR(Price Research Ratio) 지표로 저평가 시점에 매수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두 번째론 R&D 결과 발표가 임박한 시점에 투자하는 방식입니다. 첫 번째 방식은 가치투자에 가깝고, 두 번째 방식은 모멘텀 플레이에 가깝습니다. PRR은 국내 투자자에겐 생소하지만 켄 피셔 등 저명한 투자자들이 많이 참고했던 방식입니다."

▷R&D를 많이 한다고 해서 성공이 담보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기준으로 투자 기업을 골라내나요?
"그 회사가 과거 강점을 가졌던 분야에서 R&D를 하고 있는지, 고급 인력들을 유치했는지 등을 감안합니다. 이를 판단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가 임직원 평균연봉입니다. 고급인력일수록 연봉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밖엔 시장성, 특허 개수 등을 고려합니다."

▷국내에서 R&D를 기반으로 성장주가 될 가능성이 높은 업종이 있다면 알려주십시오.
"방산, 제약, 게임, 정보기술(IT) 업종입니다. 특히 방산의 경우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 중에서도 R&D 비중이 높은 편입니다. 서방에 무기를 팔 수 있는 국가 중에서도 기술력이 빼어나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지면서 유럽향 수출이 본격화되는 모멘텀까지 얹어졌습니다. 제약의 경우 이른바 '바이오주'보다는 전통 제약주를 선호합니다. 감기약 등 이미 잘 팔리는 약이 있기 때문에 꾸준히 돈이 들어오고, 이 돈으로 안정적으로 R&D를 이어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임의 경우 '3N(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의 체제에서 펄어비스카카오게임즈 등 다른 게임사로 주도권이 옮겨가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고급 개발자들도 3N에서 다른 회사로 많이 옮겨가는 추세입니다. 이런 레짐체인지 구간에서 다른 게임 회사들이 폭발적 성장을 할 수 있다고도 보입니다."

▷아무리 검증된 성장주라도 경기둔화 국면에선 힘을 못 쓰지 않을까요? 지금 투자해도 되나요?
"R&D에 집중해 투자한다는 건, 안정적인 기업에 투자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꾸준히 벌어들이는 돈이 없다면 오랜 기간 R&D를 하지 못할 테니까요. 동시에 PRR 지표 등으로 저평가된 기업에 선별 투자 한다면 어려운 시장을 견뎌낼 수 있다고 봅니다. 저평가된 성장주에 투자하는 셈이지요. 예를 들어 소수의 임상 스케줄이 중요한 바이오주의 경우 경기둔화 여파를 크게 맞을 수 있지만, 전통 제약주의 경우 상대적으로 주가가 견조한 경향을 보입니다. 물론 이런 식의 신중한 투자법은 대세 상승장에선 수익을 못 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시장이 하락하거나 횡보할 경우에는 오히려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유망한 투자법이라고 여겨집니다."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