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홀딩스의 조속한 포항 이전을 요구하는 포항 시민단체가 지난 8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뉴스1
포스코홀딩스의 조속한 포항 이전을 요구하는 포항 시민단체가 지난 8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뉴스1
지난 8일 포스코홀딩스와 계열사가 입주한 서울 삼성동 포스코센터. 포항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포스코지주사·미래기술연구원 포항이전 범시민대책위원회’가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의 퇴진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최 회장이 포스코홀딩스 본사를 포항으로 서둘러 이전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포항시 공무원들까지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상경했다. 포항시는 올초부터 이 단체와 적극 협력하면서 포스코그룹을 압박하고 있다. 포항시가 관변단체를 대거 동원해 ‘관제데모’를 벌이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기업의 본사 이전은 주주들이 주주총회를 열어 결정할 사안”이라며 “0.1% 지분도 없는 기초 지방자치단체가 인허가권을 무기로 기업에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령에도 없는 ‘그림자 규제’

합의 뒤집고, 돈 더 내라…"지분 0.1%도 없는 지자체가 기업 주인행세"
11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경제단체는 지난달 초 기획재정부에 ‘덩어리 규제’ 개선 리스트를 제출했다. 이와 별도로 지자체의 ‘그림자 규제’를 하루빨리 개선해 달라는 의견도 함께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자 규제는 법령에 근거하지 않은 행정지도 및 유권해석 등을 뜻한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눈에 보이는 법령보다 기업들을 더욱 옥죄는 것은 일선 기초 지자체의 이해할 수 없는 그림자 규제라는 호소가 많았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개혁 드라이브에도 불구하고 일선 현장에서는 지자체의 소극적인 업무 처리 등 ‘갑질’ 행각이 여전하다는 지적이 많다. 기업인들은 중앙정부나 광역 지자체에 비해 기초 지자체의 갑질이 더욱 심하다고 호소했다. 1995년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공장 설립 및 도로 점용 등 대부분 인허가권을 관할 시·군·구가 가져갔기 때문이다. 법적 요건을 갖췄음에도 유권해석을 내세워 인허가를 반려하거나 불허가 처분을 내려 기업을 골탕 먹이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교수·시민단체 등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는다며 각종 위원회를 설립해 인허가가 늦어지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SK하이닉스가 120조원을 투입해 추진하는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사업이 대표적 사례다. 경기 여주시는 용인 클러스터에 막대한 공업용수를 공급하면 농업용수가 부족해질 수 있다는 주민 민원을 앞세워 행정 절차 처리를 늦추고 있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지자체는 인허가를 내주기 싫거나 추가로 원하는 것이 있을 때 항상 주민 민원을 이유로 내세운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기업이 지자체에서 인허가를 받을 때 법령상 근거 없는 주민동의서를 받아오라는 것은 해묵은 관행으로 꼽힌다.

기업 주인으로 군림하려는 지자체

기업 투자를 유치한 뒤 기존 합의사항을 뒤집는 사례도 적지 않다. 국내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쿠팡이 지난달 말 전북 완주에 1300억원을 들여 첨단 물류센터를 짓기로 한 계획을 철회한 것도 지자체가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으면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목적법인(SPC) 완주테크노밸리㈜가 최초 합의한 분양가보다 높은 가격을 책정하면서 양측 간 감정싸움이 불거진 것이다. 기업들은 지자체가 투자 양해각서(MOU)를 맺기 전까지는 간과 쓸개라도 빼줄 것처럼 대하지만 정작 체결 이후 실시협상 과정에선 무대응으로 일관한다고 토로한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MOU 전엔 수시로 전화하던 시청 담당과장이 정작 MOU 체결 이후엔 바쁘다는 이유로 전화 통화도 쉽지 않다”고 전했다.

기업들은 지자체의 잇단 갑질에도 속앓이만 하고 있다. 감사원이 설치한 전국 기업불편부담신고센터 접수도 꺼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자칫 제보했다가 해당 지자체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달 민선 8기 지방정부 출범 이후 지역 기업을 대상으로 한 공무원들의 이른바 ‘군기 잡기’도 심해지고 있다는 호소가 끊이지 않는다. 통상 지역 기업들은 해당 지자체에 행사 협찬 및 사회공헌 성금을 낸다. 이런 요구가 새 집행부가 출범할 때마다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 기업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일부 지자체와 지역 주민들이 지역 소재 기업의 주인으로 군림하려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며 “이런 갑질이 계속되면 국내 기업들의 해외 투자만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