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 범위 제한한 '액수·직급 제한'과 현미경식 죄명 규정도 대폭 삭제
직권남용은 '부패범죄', 조직범죄는 '경제범죄'…모호한 '직접 관련성'도 손질
'범죄의 재분류'로 검수완박 우회…선거·조직범죄도 檢 수사
이른바 '검수완박법'(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 시행으로 9월 10일부터 28개 특정 죄목으로 쪼그라들 예정이던 검찰의 직접수사 개시 범위가 '부패 범죄'와 '경제 범죄' 전반으로 오히려 확대될 전망이다.

'검찰의 수사 총량 축소'를 목표로 수사 가능한 범죄 액수와 직급 등을 잘게 쪼개는 등 세세한 제한을 걸었던 기존 대통령령이 새롭게 개정됨에 따라 검찰은 운신의 폭을 크게 넓힐 수 있게 됐다.

'범죄의 재분류'로 검수완박 우회…선거·조직범죄도 檢 수사
◇ 확 넓어진 '부패·경제 범죄'…'액수 제한' 떼고 큼직해진 수사 범위
법무부는 11일 공개한 '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수사개시규정) 개정안에서 '검수완박법'이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로 명시한 '부패·경제 범죄'를 재정의했다.

기존 시행령이 부패 범죄에 11개, 경제 범죄에 17개 항목을 정하고 검찰이 이 범위를 넘지 못 하게 했다면, 이번 개정안은 다른 법률이나 국제 규범에 나오는 '부패'와 '경제'의 개념에서 출발해 '부패 범죄'와 '경제 범죄' 전반으로 검찰의 수사 범위를 넓혔다.

현행 수사개시규정상 '공직자 범죄'인 직권남용과 허위공문서 작성죄를 '부패 범죄'로 재분류한 것이 대표적이다.

'검수완박법' 입법에 따라 '공직자 범죄'는 검사의 수사 대상에서 빠지게 되지만, '부패 범죄'를 재정의함에 따라 '공직자 범죄'로 분류됐던 범죄 상당수는 검찰이 수사할 수 있게 됐다.

법무부는 "직권남용과 허위공문서 작성 등은 뇌물과 함께 현대 부패 범죄의 전형적인 유형"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국회가 비준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유엔(UN) 부패방지협약이나 현행 부패방지법 등은 공무원의 직권남용을 부패 행위로 규정한다고도 지적했다.

이런 식으로 정치자금법 위반이나 매수·이해유도 등 '선거 범죄'에 포함된 범죄들은 '부패 범죄'로, '방위사업 범죄'였던 기술 유출 범죄는 '경제 범죄'로 다시 분류해 검찰이 수사할 수 있게 했다.

법무부는 시행령에서의 범죄 재분류가 국회를 우회하거나 월권을 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일례로 부패재산몰수법은 이미 '부패 범죄'를 전형적인 부패뿐만 아니라 사기, 공갈, 횡령, 배임, 선거 범죄, 경제 범죄 등으로 폭넓게 정의하고 있다는 게 법무부 설명이다.

종전 시행령에서 '3천만원 이상 뇌물', '5억원 이상 사기·횡령·배임', '5천만원 이상 알선수재·배임수증재·정치자금범죄', '4급 이상 공직자' 등으로 수사 가능 범위에 자잘하게 붙어있던 제한 규정들은 모두 사라진다.

의료법상 '의료인 리베이트' 등 부패·경제 범죄에서 28개로 세세히 한정됐던 수사 범위도 '정치자금·공직선거 관련 부패 범죄', '기업·조세·금융 관련 경제 범죄' 등 큼직큼직한 범주로 재편성됐다.

극히 일부 죄목에만 규정됐던 '미수범' 수사와 '양벌규정'(행위자와 법인을 함께 처벌)에 따른 수사도 모든 부패·경제 범죄를 대상으로 허용했다.

검찰 수사 범위가 크게 제한돼 1차 검경 수사권 조정 후 수사 공백 현상이 지적된 마약류 유통 범죄는 '경제 범죄'로, 조폭이나 보이스피싱 등은 '경제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범죄'로 정의해 직접수사 대상에 넣었다.

'범죄의 재분류'로 검수완박 우회…선거·조직범죄도 檢 수사
◇ 모호했던 '직접 관련성' 손질…진범 잡고도 허송세월하게 한 제한 삭제
이번 개정안에서 눈에 띄는 대목 가운데 하나는 '직접 관련성' 규정을 손질한 것이다.

현재의 형사사법체계에서 범죄 사건의 절대다수는 경찰이 수사하고 검찰은 경찰이 혐의를 인정한 사건만을 송치받는데, 이때 검찰이 수사할 수 있는 영역은 송치 사건과 '직접 관련성'이 있는 사건에 한정된다.

그러나 이 규정이 시행된 지난해부터 '직접 관련성' 개념이 너무 좁고 모호해 검찰이 응당 해야 할 보완수사까지 가로막힌다는 법조계와 시민단체들의 지적이 끊이지 않아 왔다.

가령 '직접 관련성'을 소극적으로 해석할 경우 경찰이 송치한 보이스피싱 단순 수거책을 타고 올라가 총책을 붙잡더라도 그 총책의 범죄단체조직죄는 수사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눈앞에 물증이 보이거나 진범을 붙잡아도 다시 경찰에 사건을 송부해 허송세월하게 된다거나, 애써 해놓은 보완수사가 재판 과정에서 위법 판단을 받을까 봐 검사들이 '안전한' 수사만 하게 될 것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법무부가 내놓은 수사개시규정 개정안은 367자에 달하던 기존의 정의를 '범인·범죄사실·증거 중 어느 하나 이상을 공통으로 하는 경우'로 간단하게 만들었다.

다만 개정 형사소송법이 명확히 한 '별건 수사 금지' 조건은 준수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범죄의 재분류'로 검수완박 우회…선거·조직범죄도 檢 수사
◇ 무고·위증·국가기관 고발 사건, 검찰이 직접수사 가능
새로운 시행령은 개정 검찰청법이 명시한 "부패 범죄, 경제 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에서 '중요 범죄'도 새로 규정했다.

무엇이 '중요 범죄'인지를 구체적으로 정할 권한이 대통령령에 위임됐으니 그 유형도 정비하겠다는 것이다.

법무부가 제시한 '중요 범죄'는 ▲ 무고·위증 등 사법질서 저해 범죄 ▲ 개별 국가기관이 법령에 따라 검사에게 고발·수사의뢰하도록 한 범죄다.

무고 혐의가 있다는 판단이 서도 경찰이 이미 무혐의로 불송치한 사건은 검사가 아예 손을 댈 수 없고, 이로 인해 각종 음해성 허위 고소 남발을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므로 '중요 범죄' 범주에 넣어 검찰이 수사하겠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무고나 위증 수사가 수사·재판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부수적인 범죄 유형이라며 "개정법의 취지를 넘어 수사 범위를 자의적으로 확대하는 규정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또 다양한 법률이 이미 규정해둔 국가기관의 검찰 고발·수사의뢰 규정 취지를 감안해 이 범죄들 역시 '중요 범죄'에 포함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5·18특별법이나 국회증언감정법, 국가인권위원회법 등은 해당 기관이 범죄 혐의를 발견한 경우 검찰에 고발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검수완박법'에 따라 검찰이 이런 고발 사건 수사를 할 수 없다면 다수의 현행 법령과 충돌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만 '검찰'을 특정하지 않고 고발하도록 규정한 선거 사건 등은 '중요 사건'에서 제외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