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현대제철 정규직 노조가 충남 당진제철소의 통제센터를 불법 점거한 지 95일째가 됐다. 노조가 안동일 현대제철 사장 집무실을 무단 점거한 채 농성하고 있다.  /현대제철 제공
4일 현대제철 정규직 노조가 충남 당진제철소의 통제센터를 불법 점거한 지 95일째가 됐다. 노조가 안동일 현대제철 사장 집무실을 무단 점거한 채 농성하고 있다. /현대제철 제공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됩니다. 안전을 보장할 수 없어요.”

4일 현대제철 충남 당진제철소 통제센터 주변은 긴장감이 흘렀다. 이 건물에 들어가려 하자 회사 관계자들이 안전을 이유로 막아섰다. 5층에 자리 잡은 사장실을 정규직 노조가 불법 점거한 지 95일째다. 노조가 설치한 스피커에서는 노동가요 ‘철의 노동자’가 귀청이 터질 듯 울려 퍼졌다. 통제센터의 정문 건너편 컨테이너에는 ‘차등성과 분쇄’ ‘사장 퇴진’ 등이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소속인 현대제철 정규직 노조는 지난 5월 2일부터 당진제철소 사장실을 무단 점거한 채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5월 3일부터는 인천·포항·순천 공장의 노조원들도 공장장실을 점거했다.

제철소 곳곳에 비난 현수막

통제센터에는 제철소 모든 공장의 생산 운영 및 안전, 환경, 에너지, 물류, 정비, 품질, 재경 등 관리 부서가 모여 있다. 이 건물에 근무하는 직원은 500여 명이다. 사장실은 통제센터의 두뇌 역할을 한다.

하지만 사장실이 점거당하면서 안동일 현대제철 사장을 비롯한 주요 임원들은 출근은커녕 현장으로 가지도 못하고 있다. 물리적 충돌을 비롯해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 사장은 통상 1주일에 3~4일은 제철소 현장에서 근무했다. 회사 관계자는 “사장이 제철소에 나타나면 노조를 더 자극할 수 있어 불가피하게 비대면으로 경영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포항·순천공장장도 임시 사무공간을 마련해 근무하고 있다.

통제센터는 지난해 8월에도 현대제철 협력업체 근로자로 구성된 비정규직 노조에 의해 점거된 바 있다. 당시 일부 정규직 노조는 직고용을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조의 통제센터 점거를 비판했다.

“우리도 달라” vs “작년에 이미 지급”

성과급 받아놓고 "더 달라"…95일째 사장실 점거한 현대제철 노조
이번 점거는 노조가 직원 1인당 400만원의 특별공로금을 지급해달라고 요구하면서 비롯됐다. 현대자동차, 기아,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이 400만원의 특별공로금을 지급한 만큼 현대제철도 직원들에게 같은 금액을 달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회사 측은 지난해 임금협상에서 기본급 7만5000원 인상을 포함해 성과급(기본급의 200%+770만원)을 지급했다며 노조 요구를 거절했다. 지난해 임금 인상 덕에 현대제철 직원 평균 연봉은 9500만원으로 높아졌다.

노사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회사 측은 “작년에 실적을 반영해 성과급을 지급한 만큼 특별공로금을 추가로 주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노조도 “단 1원도 깎을 수 없으며 400만원은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급기야 현대제철은 불법 점거로 피해가 커지자 지난 5월 27일 노조 집행부를 비롯해 50여 명을 경찰에 특수주거침입 및 업무방해, 특수손괴 혐의로 고소했다. 이런 가운데 대치 상황은 100일에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노조 측에 참고인 조사만 통보했을 뿐 손을 놓고 있다. 공권력 행사로 자칫 노동계와의 갈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경찰이 민주노총 등 노조에 끌려다니면서 불법 점거를 방조하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2022년 임금 및 단체협상’에서도 노사 간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하계휴가로 노사 협상이 중단된 가운데 노조는 파업을 결의하며 엄포를 놓고 있다.

실적 나빠지는데…공로금 투쟁만

현대제철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고로 3기와 전기로 2기를 운영하는 당진제철소는 현대제철 생산능력(2400만t)의 60%가량을 차지한다.

하반기에는 회사 실적이 큰 폭으로 감소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지난 6월부터 주력 철강제품 가격이 내림세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금융정보업체인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현대제철의 3분기와 4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는 각각 5538억원, 5728억원이다. 전년 동기 대비 32.9%, 25.8% 줄어드는 수치다. 회사 관계자는 “하반기 경영 상황이 악화하는 가운데 노사가 미래 지향적 차원에서 대화에 나서길 바란다”고 말했다.

당진=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