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수급자 등 "또래와 어울리려면 돈 들어…정서적 위축"
무더위 쉼터 확대·노인정 이용자 인식 개선 등 대책 필요
"노인정도 그림의 떡"…찜통더위 견디는 취약계층 어르신
"사람을 만나면 그게 다 돈인데, 노인정 가서 주머니 사정 살피며 눈치 볼 바에는 차라리 더위를 참고 말지."
부산 사하구에 사는 80대 기초생활수급자 정모씨는 이번 여름이 유독 무덥다.

올해 더위가 일찍 찾아온 데다 낮 기온도 평년보다 높아 푹푹 찌는데도 정씨는 에어컨이 없는 집 안에 머물기 때문이다.

그는 "집에 선풍기를 틀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이마에서 땀이 삐질 흘러내린다"며 "물가는 오르는 데다 형편도 나아지지 않으니 노인정에 가 어울리기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노인정도 그림의 떡"…찜통더위 견디는 취약계층 어르신
각 자치단체가 올여름 폭염에 대응하기 위해 관내 노인정 등을 무더위 쉼터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지만, 정작 정씨처럼 형편이 어려워 집 안에 냉방시설이 부족한 어르신은 노인정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이 노인정을 '높은 벽'처럼 느끼는 이유는 또래들과 어울리면서 발생하는 비용 때문이다.

노인정에 모인 어르신들은 일정 금액을 모아 나들이를 가거나 음식을 만드는 등 자체적으로 소소한 행사를 많이 연다.

이때 적게는 1천원에서 많게는 1만원 가량을 회비로 걷는데, 일부 어르신들에겐 이마저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또 각자 집에서 가져온 음식을 서로 나눠 먹기도 하는데 매번 얻어먹기도 미안하다 보니 정서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60대 요양보호사 김모씨는 "돌보는 어르신들 대부분은 기초노령연금을 포함해 한 달 생활비가 50만원 남짓"이라며 "생활비 자체가 적다 보니 더운 날씨에 노인정이라도 가시라고 설득하지만 이미 정서적으로 소외감을 느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르신들이 더위를 식히기 위해 택하는 곳은 동네 지하철역이나 교량 밑, 관공서 등이다.

부산 강서구종합복지센터 관계자는 "한 푼이 아쉽다 보니 노인정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끼는 어르신이 정말 많다"며 "한 할아버지는 시원한 곳을 찾아 집 근처 지상에 있는 지하철 역사에서 하루 3∼4시간가량을 앉아 있다 오시기도 한다"고 말했다.

"노인정도 그림의 떡"…찜통더위 견디는 취약계층 어르신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무더위 쉼터를 확장하고, 노인정 이용자의 인식을 전환하는 등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재정 부산복지개발원 책임연구위원은 "노인정은 법적으로 명시된 사회복지 여가시설로, 지역 노인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며 "부식을 먹기 위해 회비를 걷는 1천원, 2천원이라도 형편에 따라 적은 돈 혹은 큰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공서에서 노인정의 대안으로 자체 시설을 만들어 선택의 폭을 넓혀야 한다"며 "궁극적으로는 어르신들이 노인정은 사적 공간이 아닌 모두가 공유하는 공간이라는 점을 널리 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