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선전시가 자국 내에서 처음으로 레벨 4 수준의 자율주행 차량 운행을 지난 1일부터 허가했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서 전기차 판매뿐 아니라 자율주행 기술 경쟁도 더 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과의 자율주행 기술 및 규제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선전시는 우선 당국의 허가를 받은 로보택시를 제한된 공간에서 운행하도록 했다. 아직은 운전석이 아닌 좌석엔 사람이 탑승해야 하는 등 제한이 있지만 순차적으로 관련 규제를 풀어갈 계획이다. 적용 지역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자율주행차 확산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사고 시 책임 소재를 가리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선전시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상황을 세분화했다. 운전자가 운전대를 잡았을 땐 운전자 책임, 차에 운전자가 없다면 소유자 책임으로 규정했다. 차량 시스템 결함으로 사고가 나면 차주는 제조사에 보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선전시는 적극적인 규제 완화로 전 세계 완성차 기업들의 자율주행 기술의 메카로 거듭나고 있다는 평가다. BYD를 비롯해 △바이두의 자율주행 사업 부문인 아폴로 △도요타가 출자한 포니닷에이아이 △알리바바가 투자한 오토엑스 △르노·닛산이 지분을 매입한 위라이드 등 글로벌 기업이 모여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시험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중국이 미래차 개발계획을 바탕으로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뿐 아니라 다른 해외 국가도 자율주행 레벨 4로 가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은 자동차안전지군 규칙을 개정해 레벨 4 운행을 허가했고, 독일은 지난해 레벨 4 실용화를 위한 자율주행 법을 제정했다.

반면 한국은 규제 완화에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자율주행 기술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보다 5년가량 뒤처졌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우선 ‘주행 데이터’ 축적에서 차이가 벌어진다. 안정적인 자율주행을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데이터를 쌓고,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방안을 터득해야 사고를 줄일 수 있다. 업계에서는 사고율이 2% 미만으로 떨어져야 로보택시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바이두의 자율주행 누적거리는 지난해 말 기준 2100만㎞를 넘어섰다.

한국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이 측정한 국내 자율주행 누적 주행거리는 지난 1월 기준 72만㎞에 불과했다. 이제 겨우 레벨 3의 자율주행을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기아는 연말 출시되는 제네시스 G90을 시작으로 자율주행 레벨 3 기능을 탑재한다. 내년에는 기아 EV9 등에 고속도로에서 시속 80㎞까지 자율주행으로 달릴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레벨 4로 가려면 다양한 준비가 필요하다. 사고기록 시스템 구축 및 분석을 비롯해 △자율주행 운전자 주의 의무 완화 △자율주행 기능 사전교육 의무화 △자율주행 통신 사이버 보안대응 규정 등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자율주행 관련 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밀어붙이지 못하면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됐을 때 시장에서 경쟁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뒤처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