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랜드 농구단 매각 후 에어컨 영업…데이원 사무국장으로 컴백 '김성헌'이라는 이름을 아는 농구 팬이 있다면 '열혈 팬'이라고 자부해도 좋다.
경복고와 연세대를 나온 김성헌(50)은 대우증권 농구단에 입단했지만 이렇다 할 활약은 하지 못하고 1997년 은퇴했다.
그를 기억하는 팬은 아마 199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 연세대를 응원했을 가능성이 크다.
김성헌이 농구 팬들에게 가장 큰 존재감을 알린 경기가 바로 연세대 재학 시절인 1994-1995시즌 농구대잔치 8강 플레이오프 삼성전자와 경기였기 때문이다.
당시 주전 가드 이상민 전 삼성 감독이 부상으로 뛸 수 없게 된 연세대는 김성헌에게 '대타' 역할을 맡겼는데, 김성헌이 1차전에서 15점, 4어시스트로 맹활약하며 연세대의 85-76 승리를 이끌었다.
이 경기를 기억하는 팬이 아니라면 지난해 한국가스공사에 매각된 전자랜드 농구단 사무국장이던 김성헌 국장의 이름까지 안다는 것인데, 이 역시 웬만한 '열성 팬'이 아니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어찌 됐든 바로 이 김성헌 국장이 올해 새로 출범한 데이원스포츠 프로농구단 사무국장으로 농구계에 복귀했다.
김성헌 국장은 지난해 전자랜드 농구단이 한국가스공사로 인수될 때도 함께 이동하려고 했지만 여러 조건이 맞지 않아 전자랜드에 남았다.
지난 22일 연합뉴스와 만난 김성헌 국장은 "한국가스공사가 공기업이다 보니 농구단을 인수했지만 사무국장과 같은 관리직까지 데려가기는 조건이 까다로웠다"며 "심지어 제가 코치 계약을 해서 같이 가는 방안도 검토했는데 여의치 않아 결국 전자랜드에 남았다"고 설명했다.
수유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줄곧 농구인의 길을 걸어온 그는 농구단을 떠나보내고 전자랜드에 남아 기업체 특판팀 발령을 받았다.
기업 상대 에어컨 영업을 하게 된 김 국장은 "에어컨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막막하기도 했지만 농구단 일을 하면서 알게 된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다"고 고마워했다.
특히 KCC에서 선수로 뛰다가 지금은 KCC에서 건설 관련 업무를 하는 송유섭 씨가 의뢰한 견적으로 성과를 올렸다며 "못 잊을 정도로 고맙다"고 말했다.
1년 전에 전자랜드 농구단을 매각하는 입장이었던 그는 이번에는 반대로 오리온 농구단을 인수한 데이원스포츠 사무국장에 선임돼 다시 농구 코트로 돌아왔다.
그는 "농구를 떠날 뻔한 적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연세대 입학 후 1학년 2학기 때 건강상의 이유로 일찌감치 은퇴한 그는 "3학년 2학기에 농구부 매니저를 하라는 제의를 받았다"며 "처음엔 매니저로 들어갔는데 연습 상대까지 하다가 4학년이 되면서는 최희암 감독님이 '그냥 선수 다시 해라'라고 하셔서 복귀했다"고 회상했다.
농구대잔치 삼성전자와 플레이오프 1차전은 4학년 복귀 후에 나온 '인생 경기'가 됐다.
이후 대우증권 농구단에 입단했지만 그는 "프로가 되면서 그때는 외국인 선수 2명이 40분씩 다 뛸 때라 출전 기회가 없었다"며 "5년 계약을 했는데, 도저히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지 않아서 프로 원년인 1997시즌만 뛰고 바로 은퇴했다"고 두 번째 '농구와 이별'을 돌아봤다.
김 국장은 "첫 시즌만 뛰고 바로 은퇴했으니 KBL '은퇴 1호'가 제가 아니겠느냐"라고도 말했다.
프로농구가 1997년 2월 1일 출범했고 그의 마지막 경기 기록이 1997년 2월 19일이니 프로농구 첫 은퇴 사례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때도 평소 성실함을 눈여겨본 구단으로부터 매니저 제의를 또 받았다는 것이다.
결국 이때부터 본격적인 구단 사무국 업무를 시작한 김 국장은 지난해까지 25년 가까이 구단 운영팀장을 거쳐 사무국장까지 역임한 뒤 1년간 '에어컨 기업 특판 영업'으로 외도했다가 다시 농구로 돌아온 셈이다.
그가 일한 구단이 대우증권에서 신세기, SK, 전자랜드로 주인이 자주 바뀌었지만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전자랜드다.
김 국장은 "대기업들이 많은 프로농구에서 전자랜드가 20년 가까이 팀을 운영했다"며 "잊을 만하면 구단 매각설도 나오고, 팀 성적이 안 좋을 때도 있어서 어렵기도 했지만 그래도 농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전자랜드에는 감사한 마음뿐"이라고 인사했다.
지난해 선수단을 한국가스공사에 보냈을 때와 이번에 자신이 직접 전자랜드를 떠날 때의 기분은 또 달랐다고 한다.
그는 "13일에 마지막 출근하고 나오는데 뭉클한 마음에 사무실 배경으로 '셀카'를 하나 찍었다"고 털어놨다.
2003년부터 '전자랜드 맨'이었던 그는 이제 2022-2023시즌부터는 전자랜드를 인수한 한국가스공사와 적으로 만나 싸워야 한다.
김 국장은 "데이원으로 오게 되면서 유도훈 감독님께 전화드렸다"며 "작년에 같이 못 가서 아쉬웠는데 너무 잘 됐다고 기뻐해 주셨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면 적응되겠지만 초반에 한국가스공사와 경기는 좀 느낌이 다를 것 같다"고 걱정했다.
김 국장은 "진짜 작년에는 농구를 떠나면서 이제는 다시 못 갈 줄 알았다"며 "이렇게 1년 만에 영입 제의를 받고 오니 기분도 묘하고, 더 잘해야겠다는 책임감도 생긴다"고 앞으로 각오를 밝혔다.
데이원자산운용은 사실 전자랜드에 비해서도 더 규모가 작기 때문에 앞으로 구단 운영에 대해 '가능할까' 하는 주위 우려가 아직 있는 것이 사실이다.
김 국장은 "아무래도 대기업 팀들과 구단 운영 방식이 다를 것"이라며 "어떻게 보면 야구 히어로즈와 같은 개념일 수도 있는데 저나 전자랜드에서 함께 온 최정용 팀장은 그래도 이런 방식을 어느 정도 경험해본 만큼 KBL 최초의 시도가 잘 이뤄지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