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창 우크라 곡물 생산·운송 차질…식량 수입국 타격
스리랑카 등 소요사태…'아랍의 봄' 재현 가능성
우크라이나 전쟁발 식량위기 개도국 정정불안 '도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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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으로 촉발된 식량 위기에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정치적 안정이 도미노처럼 쓰러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식량 안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밀의 생산과 수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2020년에 밀 2천400만t을 수확해 이 중 1천800만t을 수출했다.

세계 5위 밀 수출국인 우크라이나의 '고객 명단'에는 중국과 유럽연합(EU)도 있지만 개발도상국의 우크라이나산 밀 의존도가 더 높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통계에 따르면 2020년 레바논에서 소비되는 전체 밀의 약 절반이 우크라이나에서 수입됐다.

밀 소비량의 10% 이상을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하는 14개 국가 중 상당수가 이미 정치적 불안과 폭력 사태로 식량 수급 불안에 처한 것으로 파악된다.

식료품 부족과 물가 폭등에 시달리며 국가부도 상태에 빠진 스리랑카는 최근 연일 소요가 지속되다 결국 대통령과 총리가 쫓겨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크라이나 전쟁발 식량위기 개도국 정정불안 '도미노'
파키스탄에서 4월 임란 칸 총리가 축출된 것도 식료품과 연료 가격 상승이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튀니지, 페루에서도 시위가 발생했다.

부르키나파소, 말리, 차드 등에서도 불안정한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지난 2년간 다섯 차례 쿠데타가 발생한 사하라사막 이남 사헬 지역 국가들과 시위를 막기 위해 러시아 군대를 불러들인 카자흐스탄, 러시아 식량 의존도가 높은 키르기스스탄 등도 소요 발생 위험 지역으로 언급된다.

동아프리카 지역은 가뜩이나 40년 만에 최악의 가뭄으로 시달리던 터에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최악의 식량난에 처했다.

유엔 보고서는 최근 동아프리카 가뭄으로 1천300만명이 심각한 기아에 직면해 있다고 전했다.

소말리아는 1천684만명의 인구 3분의 1이 기아 상태다.

인접국 케냐에서는 300만명 이상이 식량 부족을 겪고 있고 150만 마리 이상의 가축이 굶어 죽었다.

에티오피아는 내전으로 북부 티그레이 지역으로 구호품 전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지난 6년간 식량난이 계속되고 있다.

동아프리카 지역은 지난 2년간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식량 공급망 차질로 피해를 본 바 있다.

케냐의 메뚜기 떼 창궐, 남수단의 홍수, 소말리아의 정정 불안, 수단의 민족 분쟁 등도 식량 사정을 악화시킨 요인으로 꼽힌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연료와 식량부족으로 최악의 경제난에 처한 스리랑카에서 극심한 혼란이 이어지는 것과 관련,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곡물 수출 제한이 스리랑카 사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줬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세계 식량 안보가 심각하게 악화했다"며 우크라이나에 묶인 약 2천만t의 곡물이 세계 시장에 공급될 수 있도록 하라고 러시아에 재차 요구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하며 전쟁으로 인해 식량 위기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또 이를 완화하려면 러시아가 흑해 봉쇄를 해제하고 우크라이나 점령지역의 곡물을 시장에 풀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데이비드 비즐리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은 "식량 부족 사태에 즉시 대응하지 않으면 취약 국가들이 생지옥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최선책은 전쟁을 끝내고 항구를 다시 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곡물 저장고 등 주요 농업 기반 시설을 폭격해 대량의 식량을 소실시키고 흑해의 항구를 봉쇄해 세계 곡물 시장에 대한 공급을 차단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에 러시아는 이미 흑해 봉쇄 계획을 수립하고 식량을 무기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서방 분석가들은 본다.

러시아는 식량 무기화를 통해 국제사회를 분열시키고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 개발도상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는 전략을 구사해 서방과의 전쟁을 유리하게 몰고 가려 한다는 것이다.

또한 식량 통제를 러시아에 대한 제재 완화와 휴전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목적인 만큼 전쟁이 끝나기 전에 흑해 봉쇄를 풀어줄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으로 불안한 국가에서 곡물 부족으로 식량 가격이 폭등하면 '아랍의 봄'과 같은 혁명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2010년대 초반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발생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 사태는 식량 가격 상승이 촉발했다.

국제정치 분석가들은 정치 정세가 불안한 리비아, 예멘, 레바논 등에서 식량 부족 사태가 지속되면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악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