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탈북어민 북송사건'과 관련해 국가정보원이 지난 6일 박지원·서훈 전 국정원장을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박 전 원장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첩보 관련 보고서 등을 무단 삭제한 혐의 등을, 서 전 원장은 탈북귀순 어민 강제북송 사건과 관련한 합동조사를 강제로 조기 종료시킨 혐의 등을 받고 있다. 박 전 원장은 즉각 "사실무근"이라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전임 정부의 상식을 넘어서는 안보 및 대북 관련 행태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은 2020년 9월 21일 서해 최북단 소연평도 어업지도선에 타고 있다가 실종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 씨를 북한군이 사살한 뒤 불태운 사건이다. 당시 정부는 "자진 월북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으나 최근 해경과 국방부는 기존 입장을 번복했다. 이 사건의 진상 조사를 위해 '서해공무원 피격 사건 진상조사 태스크포스(TF)'를 꾸린 국민의힘은 계획된 월북이 아니라 단순 표류인데도 당시 정부가 월북으로 몰아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의힘 TF 등에 따르면 당시 우리 정보 당국은 고인이 "대한민국 공무원이다. 구조해달라"고 북한군에 요청한 감청 기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7시간의 방대한 감청 기록 가운데 '월북'이라는 단어는 한 번뿐이며 그마저도 고인의 직업 발언이 아니라 북한군끼리의 대화에서 "월북했다고 합니다"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TF팀장인 하태경 의원은 이날 브리핑에서 "문재인 정부가 이대준 씨의 생존 사실을 사전에 파악하고도 유족들에게는 '실종'이라고 숨겼다"며 "이 때문에 유족들은 이씨의 피살 및 시신 소각 사실도 모른 채 2박3일 동안 엉뚱한 우리 해역에서 수색 작업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우리 군은 실종 다음날인 9월 22일 오후 3시 30분쯤 이씨가 북한 해역에서 생존해 있음을 파악했고, 문재인 당시 대통령에게도 보고됐으나 아무런 구조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이씨는 이날 오후 9시40분쯤 북한군에 의해 사살됐다. 또 문 전 대통령은 9월 23일 이씨의 피살 및 시신 소각 사실을 보고받았으나 유족에겐 알려주지 않았다고 국민의힘 TF는 주장했다.청와대와 군이 즉시 조치를 취하고 유족에게도 공유했으면 살릴 수 있었다는 게 국민의힘 주장이다.

탈북어민 북송사건은 2019년 11월 2일 귀순 의사를 밝힌 북한 선원 2명을 판문점을 통해 비공개로 강제 추방한 사건이다. 당시 정부는 이 사실을 숨겼으나 공동경비구역 대대장이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에게 보낸 문자메시지가 언론의 카메라에 포착돼 세상에 알려졌다. 정부는 이들이 동료 16명을 살해한 흉악범이라 추방했다고 밝혔지만, 탈북민도 귀순하는 순간부터 대한민국 국민이므로 본인 의사에 반하는 강제북송은 부당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통상 몇 달씩 걸리는 탈북민 합동신문을 사흘만에 서둘러 끝낸 점도 석연치 않았다. 서훈 전 원장은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조사를 최대한 빨리 끝내라고 지시한 것으로 의심 받고 있다. 합동신문을 종료한 11월 5일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부산에서 열릴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초청 친서를 보냈고, 이날 귀순 어민과 선박을 북한에 인계하겠다는 뜻도 전했다.

이들 두 사건에 주목하는 것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난 북미 정상회담 이후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정부가 무리수를 뒀을 가능성 때문이다. 이대준 씨가 피살되던 날 문 전 대통령은 유엔에서 종전선언을 강조하는 녹화연설을 했다.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인권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를 위해 안보를 뒷전으로 미룬 사례들은 또 있다. 2019년 7월 NLL(북방한계선)을 넘어온 북한 선박을 나포하지 말고 돌려보내라는 청와대 지시를 어겼다는 이유로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행정관이 박한기 당시 합참의장을 청와대 인근으로 불러 4시간 넘게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는 것이다. 청와대 조사관들은 "안보실 지시는 통수권자의 명령으로 볼 수 있는데 왜 따르지 않았느냐"고 추궁했고 박 의장은 "나는 국방장관의 군령 보좌관으로, 장관을 통해 내려온 지시는 따르지만 안보실 1차장의 직접 지시를 따르는 건 적절치 않다고 봤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충남 계룡대에서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대통령실 행정관이 합참의장을 조사하거나 참모총장을 불러내는 일은 우리 정부에서는 절대 없을 것"이라고 한 것은 이를 겨냥한 것이다. 청와대 행정관이 육군 참모총장을 불러낸 일은 2017년 9월에 일어났다. 30대 청와대 행정관이 당시 김용우 참모총장을 국방부 근처 한 카페로 불러내 만났고, 이날 이 행정관은 군 장성 인사 관련 자료를 반출했다가 분실했다.

2019년 12월에는 우리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F35A 도입을 기념하는 전력화 행사를 비공개로 연 일도 있었다. 당시 공군 측은 "성공적인 전력화 과정에 기여한 관련 요원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공군 군내 행사로 진행하기로 했다"고 비공개 이유를 밝혔지만 석연치 않다는 반응이 많았다. 군대의 신무기는 평소에 적에게 위력을 과시함으로써 전쟁을 억지하는 것인데 향후 미북 협상 재개 등을 고려해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비공개로 한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새 정부와 여당이 집권 초부터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귀순어부 강제 북송 사건의 진상규명은 정국에 메가톤급 파장을 불러올 전망이다. 만약 정부와 여당의 주장대로 이른바 '월북몰이'와 무리한 강제북송이 사실이라면 전임 문재인 정부는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정부와 여당이 별다른 증거도 찾지 못한 채 억지 주장을 한 것이라면 이 또한 치명타를 피할 길 없게 된다. 안보와 인권을 이념과 맞바꾼 게 사실일까.

서화동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