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뉴욕증시가 52년 만에 최악의 성적표를 냈다. S&P500 지수는 올 상반기 20.6% 하락해 1932년, 1962년, 1970년에 이어 역사상 4번째로 상반기 낙폭이 큰 해가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와 식품 가격이 치솟았고, 코로나19 여파로 공급망 차질이 이어지며 촉발된 인플레이션이 투자 심리를 위축시켰기 때문이다. 고물가를 잡기 위해 미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를 올리며 경기 침체 우려도 커졌다.

하반기 전망은 엇갈린다. 역사적으로 상반기 증시가 급락한 해는 하반기에 반등했다는 낙관도 있다. 대공황 시대인 1932년, 미국 역사상 가장 긴 경기확장 국면이 끝났던 1970년에도 하반기 증시가 살아나 상반기 부진을 만회했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는 비관도 만만치 않다. ‘닥터 둠’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공급발 인플레이션은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며 “증시가 50%까지 폭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美 증시, 올 들어 1경원 증발

출처=월스트리트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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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현지시간) S&P500 지수는 전일보다 33.45포인트(0.88%) 떨어진 3785.38에 장을 마쳤다. 올 상반기 20.6% 떨어져 1970년(-21.0%) 이후 하락폭이 가장 컸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덮친 2008년(-12.8%), 닷컴 버블이 터진 2020년(-13.8%)보다 성적이 나빴다. 업종별로는 유가 상승의 수혜를 본 에너지주를 제외한 모든 업종이 하락했다.

다우존스 지수는 상반기 기준으로 15.3%, 나스닥지수는 29.5% 하락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은 2분기에만 22.4% 떨어져 2008년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 증시를 이끌어 온 빅테크(대형 정보기술기업)주가 이 기간 대거 폭락했다. 넷플릭스는 상반기 주가가 71% 하락했다. 페이스북 모기업 메타는 이 기간 52%, 아마존은 36% 떨어졌다. 애플과 구글 모기업 알파벳도 각각 23%, 25% 밀렸다. 대형·중소형주를 포괄하는 S&P1500종합지수를 기준으로 추산한 블룸버그 데이터에 따르면 뉴욕증시에서 올 들어서만 9조달러(약 1경1600조원)가 증발했다.

안전 자산으로 꼽히는 채권 시장도 부진한 성적표를 냈다. 10년물 미국 국채 금리는 올 초 연 1.63%에서 지난달 말 기준 3.01%까지 뛰어올랐다. 가격은 상반기 기준 10% 하락했다. 투자은행 도이체방크에 따르면 채권 가격이 상반기에 이만큼 부진한 것은 1788년 이후 처음이다.

올 초 최고점을 찍었던 뉴욕증시는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하락세를 탔다. 국제유가와 밀 등 식량가격이 상승하자 3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8.5%로 41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고, 5월(8.6%) 이를 경신하며 인플레이션 위기가 심화됐다. 이에 미 중앙은행(Fed)이 3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며 ‘제로금리’ 시대를 끝냈고, 지난달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며 유동성 축소에 나섰다.

하반기 증시 전망 어두워

하반기 증시 반등을 점치는 낙관론자들은 역사적으로 상반기 S&P500 지수가 폭락한 해 하반기에 큰 폭으로 반등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네드 데이비스 리서치에 따르면 1932년 상반기 S&P500는 36.9% 떨어졌지만 하반기 34.6% 반등했다. 1962년에도 상반기 낙폭(-22.1%)을 하반기(13.2%)가 일부 만회했다. 다만 에드 클리솔드 네드 데이비스 수석 전략가는 “증시는 미국 경기가 침체를 피해야 반등할 수 있다”며 “답은 결국 Fed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달 29일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유럽중앙은행(ECB) 연례 포럼에서 경기 침체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기준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을 잡겠다고 했다. 인플레이션이 꺾였다는 수치가 나오지 않는 이상 이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Fed가 한 차례 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

경기 침체의 적신호는 이미 켜졌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은 미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0%일 것으로 집계했다. 1분기(-1.6%)에 이어 2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 기술적 경기 침체로 간주된다. 모건스탠리도 2분기 GDP 성장률 추정치를 기존 2%에서 0.3%로 낮췄다.

이달 도이체방크가 월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88%가 내년이 지나기 전 미국 경기가 침체될 것으로 예측했다. 지난 2월에는 31%, 지난달 78%였던 응답률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경기가 내년 이후 침체될 것으로 본 응답자는 2월 59%에서 이달 8%로 줄었다.

‘닥터 둠’ 루비니 교수는 이날 국제 기고 전문 매체 ‘프로젝트 신디케이트’를 통해 미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부채 위기까지 더한 복합 경제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전쟁과 코로나19 등 공급 부문에서 유발한 인플레이션은 금리 인상 등 통화정책을 썼을 때 경기 침체를 불러올 확률이 높다는 것.

그는 “세계 정부와 민간 부채 수준이 현재 350% 수준인 점을 고려할 때 빠른 속도의 긴축은 ‘좀비’ 가계 및 기업, 정부를 디폴트(채무불이행)로 몰고 갈 수도 있다”며 “증시가 추가로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