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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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시스템은 사람이 숙성할 수 있도록 놔두지 않는다. 계속 뭔가를 해야 하니, 성장할 시간이 없다.”

방탄소년단(BTS)은 지난 14일 데뷔 9년 만에 ‘단체활동 잠정 중단’을 선언하며 이같이 말했다. 자신들을 ‘K팝의 아이콘’으로 만들어준 바로 그 ‘K팝 시스템’ 때문에 몸과 마음이 탈진했다고 토로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전 세계 ‘아미’(BTS 팬)는 물론 관련 시장도 큰 충격을 받았다. BTS 소속사인 하이브의 주가는 15일 하루 24.87%나 빠졌다.

BTS가 단체활동 중단 계획을 밝힌 건 자체 유튜브 채널인 ‘찐 방탄회식’을 통해서였다. 이들은 “우리가 잠깐 멈추고, 해이해지고, 쉬어도 앞으로의 더 많은 시간을 위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BTS는 앞서 10일 ‘챕터 1을 마무리한다’는 의미를 담은 앨범 ‘프루프(Proof)’를 발표했다. 돌이켜보면 ‘챕터 1’을 정리한다는 건 팀 활동에 쉼표를 찍는다는 의미였다.

BTS는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정과 시스템에 지쳤다고 했다. 리더 RM은 “생각을 많이 하고 숙성돼서 내 것으로 나와야 하는데, 물리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니 숙성이 안 되더라”며 “(우리 팀은) 방향성을 잃었고 생각한 후에 다시 돌아오고 싶은데, 이런 걸 이야기하면 (팬들에게) 무례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슈가도 “(언제부턴가) 억지로 쥐어짜내고 있었다”고 거들었다.
쉼표 택한 BTS…아미도 개미도 울었다
군 복무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다. 글로벌 스타들은 통상 1년 전에 해외 투어를 기획하지만, BTS는 멤버들의 입대 가능성 때문에 올 하반기와 내년 일정을 못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BTS처럼 국위를 선양한 대중문화예술인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처럼 병역을 면제해주는 병역법 개정안이 국회에 올라가 있지만, 통과는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갑작스러운 단체활동 중단 소식에 전 세계 아미들은 슬픔에 빠졌다. 뉴욕타임스는 “아미들이 가슴 찢어지는 고통을 겪으며 혼란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하이브 주가는 전날 대비 24.87% 떨어진 14만5000원에 장을 마쳤다. 이날 하루 동안 하이브 시가총액은 1조9850억원 증발했다. 증권가에선 하이브의 실적 악화는 불가피하다고 전망한다. 하이브 영업이익에서 BTS가 차지하는 비중이 70%(작년 기준·메리츠증권 추산)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멤버들의 솔로 활동만으론 단체활동만큼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유안타증권은 올 하반기 BTS의 단체 투어가 없다면 올해 연간 영업이익이 추정치 대비 33%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선화 KB증권 연구원은 “BTS 단체활동 잠정 중단 및 월드투어 관련 불확실성으로 하이브 실적 조정이 불가피하다”며 “영업이익 추정치 하향으로 하이브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부담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중문화 전문가들은 BTS의 단체활동 잠정 중단에 대해 “한 번은 거쳐야 할 과정”이란 평가를 내놓는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그동안 K팝을 산업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고 콘텐츠를 계속 생산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춰왔는데, 그러다보면 아티스트의 창의성은 고갈될 수밖에 없다”며 “멤버들이 개별 활동을 하면서 진정성 있는 음악을 할 수 있게 하고, 또 나중에 같이 활동한다면 더 지속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경/이슬기/방준식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