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엔지니어 [사진=TSMC 홈페이지 캡처]
TSMC 엔지니어 [사진=TSMC 홈페이지 캡처]
자국 내 반도체 수급 안정을 위해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기업 대만 TSMC 공장 유치를 적극 지원하던 일본이 딜레마에 빠졌다. TSMC로 우수 엔지니어 등 일본 기업 인력들의 이탈이 예상돼서다. 미국 애리조나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서 TSMC가 글로벌 반도체 인력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떠오른 모양새다. 파운드리 역량 강화를 꾀하고 있는 삼성전자도 장기적 측면에서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TSMC에 돈 줘 땅 줘 다 퍼준 일본…인재마저 뺏길 위기

13일 일본 경제매체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최근 '실리콘 아일랜드 쟁탈전 1200명'이라는 제목의 기획을 통해 TSMC의 일본 구마모토 진출이 규슈 지역 인재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규슈는 일본 영토의 4개 핵심축 중 가장 남단에 위치한 섬으로, 1980년대 현지 반도체 생산의 40% 가량을 차지해 '실리콘 아일랜드'라고 불리면서 과거 일본 반도체의 전초 기지 역할을 했다. TSMC는 올해 착공하는 구마모토 공장에서 2024년 말부터 22~28나노미터(1㎚=10억분의 1m) 공정의 반도체 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TSMC는 공장 가동을 위해 1200명의 현지 신규 채용할 계획이다. TSMC와 일본 소니가 합작해 만든 구마모토 공장 담당 자회사 JASM은 올봄 엔지니어 모집요강을 게재하고 채용을 진행 중이다.

TSMC는 고연봉으로 인재 선점에 나섰다. 내년 봄 입사 예정인 대졸자 초임은 28만엔(한화 약 267만원), 석사 수료시 32만엔(약 305만원), 박사 수료시 36만엔(약 343만원). 구마모토현이 지난해 4월 직원 50명 이상의 197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지 대졸 기술자의 초임은 평균 19만4443엔(약 185만원), 5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장의 경우 20만9730엔(약 200만원)으로, TSMC에 비하면 급여 매력도가 떨어진다.
일본 구마모토현에 있는 JASM 반도체 공장 건설 부지에서 대형 크레인 수십 대가 작업을 하는 모습 [사진=일본 온라인 커뮤니니 캡처]
일본 구마모토현에 있는 JASM 반도체 공장 건설 부지에서 대형 크레인 수십 대가 작업을 하는 모습 [사진=일본 온라인 커뮤니니 캡처]
니혼게이자이는 "TSMC의 채용 공고를 본 규슈 반도체 관련 기업들 사이에서 한숨이 나왔다"며 "제조장치를 다루는 다른 기업들이 구마모토현 외에서 인재를 스카우트 해오는 경우가 늘어나는 등 인재 확보에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지 반도체 제조장치용 부자재를 만드는 한 공장장은 "인재 확보는커녕 (인재가) 유출될 염려가 있다"고 우려했다.

인력을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일본 규슈에서는 우수 학생을 채용하기 위한 전쟁이 벌어지는 양상. TSMC는 지난 2월 키타큐슈 내 규슈공업대학에서 인재 채용을 위한 강연을 진행하고 미래의 엔지니어들에게 실무에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을 어필했다. 매체에 따르면 이 대학의 한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에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반도체 기업의 채용열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TSMC의 구마모토 공장 유치는 일본 정부의 역점 사업이기도 했다. 해당 공장에는 약 86억달러(약 11조원)가 투입되며 일본 정부가 최대 절반 정도를 보조한다. 여기에 지방정부인 구마모토현이 따로 50억엔(약 477억원)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토지 및 건물에 대한 세금까지 감면해주기로 했다. TSMC에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일본이지만 인력 문제를 두고는 복잡한 상황에 처하게 된 셈이다.

애리조나 반도체 인력 독점하던 인텔도 압박받을 듯

TSMC의 인력 블랙홀 현상은 미국 애리조나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TSMC는 2020년 미국 투자를 결정, 지난해 애리조나 신공장 착공에 들어가 2024년 가동 목표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TSMC는 당초 해당 공장에 오는 9월부터 반도체 제조장비를 반입할 예정이었지만 그 시점을 내년 초로 연기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TSMC 신공장 건설 일정이 차질을 빚는 1차 이유로는 현지 근로자 확보 난항이 꼽힌다. 지난달 기준 미국의 실업률은 3.6%로 5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미국 경제매체 월스트리트저널이 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와 함께 지난달 9~17일 구직 환경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3명 중 2명꼴로 '새 직장을 찾기가 다소 또는 매우 쉬워졌다'고 답했다. 이는 1977년 관련 설문을 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구직에 대한 현지인들의 적극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인텔의 미국 애리조나주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 [사진=인텔]
인텔의 미국 애리조나주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 [사진=인텔]
더 큰 문제는 TSMC와 인텔 신공장의 물리적 거리가 가깝다는 점이다. 두 반도체 업체의 신공장이 들어서는 지역 간 거리는 약 80km에 불과하다. 애리조나주는 일자리 대비 노동인구가 미국에서 가장 부족한 지역 가운데 하나인 만큼 공장 투자가 본격화되면 양사 간 인력 확보 경쟁도 한층 더 불붙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인텔은 그동안 애리조나주에서 우수한 반도체 전문 인력을 사실상 독점 확보하던 상황에서 TSMC가 경쟁상대로 떠오른 만큼 어느 정도 압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TSMC와 인텔이 애리조나주 반도체 공장 투자 과정에서 치열한 맞대결을 앞두고 있는 셈이다.

TSMC 유니버스 구축 2차전은 '인재 확보 전쟁'

세계 곳곳에서 공장을 지어달라는 러브콜을 받는 TSMC지만 인력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만 내에서조차 반도체 전문 인력이 모자라다는 점 또한 TSMC가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여서 인력 확보 및 관리가 반도체 업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업계는 TSMC의 인력 싹쓸이 현상이 더 심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TSMC는 공장 신설에 따른 인력 확충을 위해 인텔, 마이크론, 네덜란드 ASML 등과 채용 경쟁을 벌여야 한다. TSMC는 설비 확대와 함께 올해 8000명 가까운 인재 채용에 나서는 등 2025년까지 임직원 수를 20% 늘릴 것으로 전망된다.

TSMC는 반도체 인력 확보를 위해 다양한 전략을 세우고 있다. 지난해에는 임직원 임금 구조를 전면 개선하며 급여를 약 20% 인상했다. 올해도 반도체 인력 확충과 글로벌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예년(3~5%)보다 높은 평균 8%의 임금인상을 결정했다. 대만 자유시보에 따르면 올해 석사학위를 소지한 신입 엔지니어들의 평균 연봉은 200만 대만달러(약 8654만원)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취임 후 한국을 첫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20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2022.5.20 [사진=연합뉴스]
취임 후 한국을 첫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20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2022.5.20 [사진=연합뉴스]
최근에는 1987년 TSMC 창립 이래 처음으로 전 사원 대상 자사주 매입 보조금 제도를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직원이 구매하는 자사주 금액의 약 15% 이하 수준에서 보조금을 지급, 핵심 인재 이탈을 막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TSMC는 대만을 넘어 미국, 일본, 유럽, 싱가폴 등 전 세계 곳곳에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고 추가 투자 계획도 갖고 있다"며 "'TSMC 유니버스'를 구축하기 위한 1차 과정이 공장 건설 등 대규모 투자였다면, 2차전은 인재 확보 전쟁이 될 것이기 때문에 삼성전자도 신규 인재 채용은 물론 직원 결속력을 높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