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기간만료, 차임연체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임대차계약관계가 종료된 이후에도 임차인이 임대차목적물을 계속점유하는 경우가 많다. 임대차관계 종료 이후에는 더 이상 임대차계약관계가 없기 때문에 점유하고 있는 전 임차인에 대해서 계약이 유지된 것을 전제로 종전과 같이 “차임”을 청구할 권리는 없다. 그러나, 전 임차인이 임대차목적물을 그동안의 사용목적에 맞게끔 종전과 같이 임대차목적물을 계속 사용수익하고 있다면, 목적물의 소유자와의 관계에서는 계약관계없이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종전에 지급하던 차임상당의 부당이득반환의무가 있게 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법리적으로 다툼이 없다.
■ 부당이득반환의무에 대해 논란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전 임차인이 임대차목적물을 소유자에게 반환하지도 않으면서 사용수익하지도 않은 상태로 유지하고 있다면, 이러한 상태의 점유에 대해서는 임차인에게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하게 할 수 있을지에 관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목적물소유자에게 목적물의 점유상태를 반환하지 않아 소유자에게 손해를 끼친다는 측면에서 볼 때는 이에 상응한 배상차원에서라도 임차인에게 차임상당의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하게 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그렇지만 법리적으로 본다면 민법상 부당이득의 성립요건인 “이득”이라는 차원에서는, 단순히 점유하기만하고 사용수익을 하지 않은 점유자가 별다른 이득을 얻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어 부당이득반환의무가 부정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이 점에 대해 대법원은, 법률상의 원인 없이 이득하였음을 이유로 한 부당이득의 반환에 있어 “이득”이라 함은 실질적인 이익을 의미하므로, 임차인이 임대차계약관계가 소멸된 이후에도 임차건물 부분을 계속 점유하기는 하였으나 이를 본래의 임대차계약상의 목적에 따라 사용·수익하지 아니하여 실질적인 이득을 얻은 바 없는 경우에는 그로 인하여 임대인에게 손해가 발생하였다 하더라도 임차인의 부당이득반환의무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2다59481 판결, 대법원 2001. 2. 9. 선고 2000다61398 판결, 대법원 1995. 3. 28. 선고 94다50526 판결). 더구나, 임차인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판단하고 있다(대법원 1998. 7. 10. 선고 98다8554 판결). 최근에도, 경매중인 다세대주택에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한 임차인이 이사를 나가면서 대항력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일부 짐을 두고 잠금장치를 해 두고서 점유를 계속한 사안에서, 그 상태동안에는 부당이득반환의무가 없다는 하급심 판결이 선고되고 법률전문지에 보도까지 된 바 있다(대구지방법원 2006. 4. 25. 선고 2005가단80490 배당이의사건).
그러나, 필자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결론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임차인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임대차목적물을 사용하지도 않았다고 하더라도 목적물의 소유자에게 점유를 회복해 주지 않는다면 소유자에게 피해를 주는 결과가 된다는 점에서 임차인에게 어떠한 식으로라도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면 정의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계약이 해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의로 문을 잠그고 점유를 회복해주지도 않으면서 개인적인 사정으로 영업을 하지 않는 점포임차인, 계약기간 종료이후 아무런 연락없이 행방을 감추어버린 주택임차인 등, 임대인이 아닌 임차인측의 일방적인 사정으로 인해 이러한 상태가 발생한 것이라면, 임대인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결론은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한다.
필자의 의견과 함께하는 학설도 있다. 이 학설에 의하면 대법원판례에서 언급하는 부당이득에 있어서의 “실질적인 이득”이라는 개념과 관련하여, 직접적으로 사용수익하지 않더라도 “이용가능성” 그 자체가 이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점유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실질적인 이익이 된다고 해석하여, 임차인에게 부당이득반환의무를 인정하고 있다.
한편 대법원은, 타인 소유의 토지위에 권한없이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자는 그 자체로써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률상 원인없이 타인의 재산으로 인하여 토지의 차임에 상당하는 이익을 얻고 이로 인하여 타인에게 동액 상당의 손해를 주고 있다고 보아야한다고 하여 부당이득반환의무를 긍정하고 있는바(대법원 1998. 5. 8. 선고 98다2389 판결), “실질적인 이득”이라는 점에서 볼 때 건물을 건축하여 타인의 토지를 점유하는 것과 타인의 건물을 점유하는 것과는 별다른 차이를 느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두 경우를 다르게 판단하고 있다. 의문이 아닐 수 없다.

■ 손해배상책임 역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이 문제를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의 문제로도 구성해 볼 수는 있다. 비록 사용수익은 하지 않아 얻은 이득이 없어 부당이득반환청구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적법하게 계약이 종료되어 더 이상 정당한 계약관계없이 불법적으로 점유함으로 인하여 소유자에게 손해를 끼친다는 점에서 본다면, 손해배상의 책임은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임대인에 대해 임대차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있는 임차인의 경우에는 건물명도와 임대차보증금반환이 동시이행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임차인의 무단점유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부인하고 있다(대법원 1998. 7. 10. 선고 98다15545 판결). 이러한 대법원의 입장 역시 형평성이라는 차원에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대법원의 논리대로라면, 사용수익하지 않으면서 점유만 하고 있는 임차인 중에서, 반환받을 임대차보증금이 남아있는 경우에 대해서는 부당이득은 물론 손해배상의 책임도 전혀 없는 반면, 반환받을 임대차보증금이 전혀 없는 경우에는 부당이득은 아니더라도 손해배상책임은 부담하여야 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동시이행항변권에 기한 논리조작에 따른 결론이기는 하지만, 반환받을 임대차보증금이 남아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정반대의 결과가 발생한다는 점에서는 선뜻 수긍하기가 곤란하다.
결국 이러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우리 대법원이 부당이득반환에 있어서 “이득”의 개념을 지나치게 좁게 보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기존 대법원에 대한 無知로 인해, ‘비록 점유는 했지만 사용수익하지 않아서 차임상당의 부당이득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식의 임차인의 항변이 재판과정에서 제기되지 않아, 이 문제가 구체적인 쟁점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이론적인 의문점으로 인해 하급심 판사들의 경우 부당이득을 인정하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형평과 정의에 맞는 기준이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이상-

<참고판례>
■ 대법원 2003. 4.11. 선고 2002다59481 판결
임차인이 임대차계약 종료 이후에도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행사하는 방법으로 목적물의 반환을 거부하기 위하여 임차건물 부분을 계속 점유하기는 하였으나 이를 본래의 임대차계약상의 목적에 따라 사용·수익하지 아니하여 실질적인 이득을 얻은 바 없는 경우에는 그로 인하여 임대인에게 손해가 발생하였다 하더라도 임차인의 부당이득반환의무는 성립되지 아니한다.

■ 대법원 1998. 7. 10. 선고 98다8554 판결
법률상의 원인 없이 이득하였음을 이유로 한 부당이득의 반환에 있어 이득이라 함은 실질적인 이익을 의미하므로, 임차인이 임대차계약관계가 소멸된 이후에 임차건물 부분을 계속 점유하기는 하였으나 이를 본래의 임대차계약상의 목적에 따라 사용·수익하지 아니하여 실질적인 이득을 얻은 바 없는 경우에는, 그로 인하여 임대인에게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임차인의 부당이득반환의무는 성립하지 아니하는 것이고, 이는 임차인의 사정으로 인하여 임차건물 부분을 사용·수익을 하지 못하였거나 임차인이 자신의 시설물을 반출하지 아니하였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 대법원 1998. 7. 10. 선고 98다15545 판결
임대차 종료 후 임차인의 임차목적물 명도의무와 임대인의 연체임료 기타 손해배상금을 공제하고 남은 임차보증금 반환의무와는 동시이행의 관계에 있으므로, 임차인이 동시이행의 항변권에 기하여 임차목적물을 점유하고 사용·수익한 경우 그 점유는 불법점유라 할 수 없어 그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은 지지 아니하되, 다만 사용·수익으로 인하여 실질적으로 얻은 이익이 있으면 부당이득으로서 반환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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