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물건을 선정하고부터 권리를 분석하고 현장조사를 하고 입찰에 임하기까지 가장 긴장되는 순간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십중팔구는 입찰표에 입찰가를 기재하는 순간을 꼽지 않을까? 물론 개찰시 낙찰자(최고가매수인)를 호명할 때에도 긴장되기는 매한가지겠지만 이때는 이미 입찰이 끝난 후의 일이므로..,
전문가의 조언을 구해 입찰가를 기재하거나 그렇지 않고 현장조사를 통해 나름대로의 판단으로 입찰가를 기재하든 간에 그 순간 손이 떨릴 정도로 긴장되고, 입찰한 후에도 개찰이 끝날 때까지 ‘입찰가를 잘 써냈을까?’, ‘입찰가가 너무 높지 않았나?’, 아니면 반대로‘입찰가가 너무 낮지 않았나?’, ‘몇 명이나 들어왔을까?’ 등 수많은 상념 속에 그 긴장은 계속되기 마련이다. 달리 말하면 입찰가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는 것만큼 입찰가 결정이 중요하다는 얘기가 될 수 있겠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입찰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기까지 내 소신대로 정확한 투자분석에 근거하여 입찰가를 써내는 사람이 입찰자중에 과연 몇이나 될까? 불행하게도 필자가 지금껏 경험하거나 주변 입찰관계자들을 통해 알아 본 바로는 입찰자 10명중에 2~3명만이 입찰자 본인 또는 컨설팅을 의뢰한 전문기관의 투자분석(서)에 근거하여 입찰가를 결정할 뿐이고, 나머지 7~8명은 그러한 투자분석(서) 없이 경험칙에 의하거나 인근지역 평균 낙찰가를 기준으로 또는 그때 그때의 법정분위기에 따라 입찰가를 정하고 있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입찰가를 정하든간에 그것은 입찰자들의 몫이므로 왈가왈부할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입찰가 산정에 있어서도 경매물건의 이해관계인을 비롯한 주변인의 ‘입김’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경매컨설팅을 하고 있는 컨설턴트의 ‘입김’은 물론이려니와 채무자(소유자), 채권자 뿐만 아니라 심지어 현장 조사차 만난 공인중개사(또는 중개업자)의 ‘입김’이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경매컨설턴트의 ‘입김’은 다반사로 일어나는 것이지만 나름대로의 접근방법을 통해 분석한 결과를 적용한다는 가정하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보자. 다음으로 채무자(소유자)의 ‘입김’은 재활차원에서 경매취하나 일반매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작용하는 것이 대부분이며, 입찰자가 채무자 (소유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고 또한 그리 흔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므로 논외로 하고 이곳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채권자의 ‘입김’과 공인중개사의 ‘입김’이 어떻게 입찰가에 반영되는가 하는 점이다.
입찰을 염두에 두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매신청채권자나 기타 등기부등본상의 이해관계인에게 채권, 임차인 또는 물건과 관련하여 문의전화 (채권자가 일반인이 아니라 기업 또는 금융기관인 경우에는 연락처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므로)를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또한 입찰예정자라면 거의 예외 없이 경매물건이 소재한 지역의 공인중개사를 통해 임대가나 매매가 등 시세를 조사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이해관계인(특히 경매신청채권자)과 공인중개사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무수히 많은 입찰예정자와 접촉하기 때문에 이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곧 입찰여부의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지위를 이용(?)하여 낙찰가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채권자와 공인중개사가 낙찰가를 끌어올리다니.., 무슨 말인가? 이해를 돕기 위해 실제 사례를 들어 보기로 하자. 지난 10월 31일 대전 동구 중동 소재 근린상가가 최초감정가 40억3816만원에 2회 유찰되어 최저매각가 19억7870만원에 경매에 부쳐졌다. 이 물건은 대전역 역세권에 소재하였지만 도심정비가 안된 낙후된 지역인데다 건물이 낡고 노후(건축년도 1979년)되었으며, 1층과 지하층을 제외하고는 2층부터 5층까지 4개층 전부가 공실이다. 개발을 위해 건물을 헐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임대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금액의 건물 개보수비용을 들여야 하는 물건이다.
필자 역시 이 물건에 대한 입찰타당성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인근 공인중개사에 들렀었는데 그 공인중개사 왈, “이 물건을 낙찰받으려면 한 25억은 훨씬 넘겨야 할 걸요?”라고 했다. 나한테만 그리 얘기했을까. 입찰 관련하여 찾아오거나 전화로 문의한 모든 사람에게 했을 법한 무책임하고도 근거없는 발언일 수도 있지만 입찰예정자로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발언이다. 물건지 인근에 중개사무소가 극히 적을수록 그 발언의 영향은 지대하다.
필자의 판단에는 약 23억4600만원이 입찰상한선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물건은 당일 경매에서 최저매각가보다 6억4090만원이 많은 26억1960만원에 낙찰되었다. 공인중개사의 ‘입김’에 의해 낙찰가가 좌우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물론 낙찰자가 나름대로의 투자분석에 기해 소신대로 입찰가를 써냈다면 이 사례는 잘못 든 예가 되겠지만 말이다.
이번엔 채권자의 ‘입김’에 의해 낙찰가가 좌우된 사례를 들어보자. 지난 11월 10일 안산지원에서 안산시 단원구 목내동 소재 공장이 경매에 부쳐진바 있다. 최초감정가 34억5천만원에 1회 유찰되어 최저매각가가 24억원으로 떨어진 상태이다. 이 물건 역시 필자가 자문하고 있는 '○○투자회사'의 투자자문차 입찰타당성을 검토했던 물건으로 유치권이 약 2억원 정도 신고되어 있어 명도 등 제반비용 감안하면 최대한 입찰가를 써낸다 해도 25억4900만원이 적정하다고 판단되었다.
입찰 3일전 최종적으로 유치권 등 권리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경매신청채권자인 ‘○○은행’ 에 전화로 문의한 바, 담당자가 “우리가 28억5천만원에 입찰을 고려하고 있다”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미심쩍어 매각기일 하루 전에 다시 한번 확인전화를 했다. 이제는 아예 입찰보증금까지 찾아놨단다. 비단 한 두명만이 문의전화를 통해 이 이야기를 들었을까?
죽었다 깨어나도 그 금액까지는 끌어올릴 자신이 없어 결국 입찰을 포기했는데 당일 입찰 결과 2명이 입찰하여 최저가보다 4억3500여만원이 많은 28억5100만원에 낙찰되었다. ‘○○은행’이 예고한 금액보다 100만원이 더 높은 금액이다. 차순위 입찰자가 누군지 밝히지 않아 예상대로 ‘○○은행’이 28억5천만원에 입찰을 들어왔는지 아니면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3자가 이에 훨씬 못미치는 금액으로 입찰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채권자는 소정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 되었고, 낙찰자는 채권자의 ‘입김’에 놀아난 꼴이 되었다.
이처럼 입찰하기까지 만나는 부류중에 그나마 가장 접근하기 쉬운 이들의 한마디는 고의이건 선의이건 입찰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굉장한 부담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들의 ‘입김’을 전혀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 경매의 현실이다. 입찰까지의 전과정이 입찰자의 책임하에 이루어지는 것만큼 이들 발언 내용의 진위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입찰가를 정하는 것 역시 입찰자의 몫임을 명심하여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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