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생삼겹에서 냉삼겹으로
1980년대, 지방 출신 서울 유학생의 거의 유일한 동물성 단백질 공급원은 삼겹살이었다. 정육점은 물론 동네 슈퍼에서도 팔았던 얼린 삼겹살은 인기 만점이었다. 소고기는 언감생심이고, 얇게 사각형으로 썰어서 스티로폼 접시에 담은 삼겹살 몇 팩이면 ‘촌놈들’ 영양보충하기에 충분했다.

냉동삼겹살(냉삼)의 인기가 시들해진 것은 1990년대 들어 냉장유통이 확산하면서였다. 한돈이 냉장 상태로 공급되면서 ‘생삼겹’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다. 기존 삼겹살에는 ‘냉동’이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한돈 대신 수입육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근년 들어 복고풍의 유행과 함께 젊은 층에 인기를 얻었던 냉삼이 가정집 식탁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물가 급상승과 함께 동네 정육점에서 파는 삼겹살이 ㎏당 3만원을 훌쩍 넘어서자 수입 냉삼으로 바꾸는 집이 늘고 있는 것. 가격이 절반 수준인 수입 냉삼으로 바꾼 한 40대 직장인은 “웬만하면 한돈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지만 삼겹살 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고 털어놨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가 공포 수준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5.4%나 뛰었다. 소비자의 구입 빈도와 지출 비중이 큰 품목으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 상승률은 6.7%에 달했다. 돼지고기(20.7%) 수입 소고기(27.9%) 감자(32.1%) 배추(24.0%) 밀가루(26.0%) 경유(45.8%) 휘발유(27.0%) 등 만만한 품목이 없다.

더 큰 문제는 올해 들어 상승폭이 계속 커져온 물가 고공행진이 당분간 꺾일 조짐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외 요인에 따른 유가·곡물가 인상에 국내에서도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양파, 마늘, 감자 등 밭작물 출하량이 줄면서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말 돼지고기와 밀가루, 대두유 등 14개 수입품목에 대한 할당관세를 0%로 낮추는 등 대책을 내놨지만 뛰는 물가를 잡기엔 역부족이다. 국내에서 유통 중인 수입 돼지고기는 대부분 미국·유럽·캐나다산인데 미국·유럽과는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관세 인하 효과가 없다.

물가·금리·환율이 모두 오르고, 생산·소비·투자가 모두 감소하는 총체적 난국이다. 묘안이 없다는 게 문제다. 정부, 기업, 소비자 모두 고통을 분담하며 이 난국을 이겨내는 수밖에….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