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쾅 터지는 코인·주식 '폭탄'…개인회생 신청 급증
지방 공무원인 A씨는 2020년 동료들의 권유로 암호화폐 투자를 시작했다. 소액으로 시작한 A씨는 초반 코인 시장 활황에 편승해 손쉽게 100%가 넘는 수익을 냈다. 그러자 욕심이 생겼다. 주변에 10배, 100배 수익을 냈다는 소문이 돌자 마음이 급해졌다. 하루에도 50~80%씩 급등락하는 이른바 ‘동전코인’ 매매에 뛰어든 것이다. 신용대출까지 받아 밀어 넣은 원금 2억5000만원이 날아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현재 그의 계좌에는 5% 정도 원금만 남았을 뿐이다. 그는 “야근과 주말 수당까지 챙겨서 막아봤지만 역부족이었다”며 최근 개인 회생 신청 사실을 가족에게 털어놨다.

법원 “코인·주식 채무자도 회생 대상”

코로나19 사태 후 증시 호황을 기회로 코인·주식 투자에 뛰어든 끝에 빚을 지고 이를 감당하지 못해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채무자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암호화폐시장의 침체가 심해지고, 테라·루나 사태까지 터진 5월에는 상담 문의가 평소보다 20~30% 늘었다는 게 파산전문 변호사업계의 전언이다. 대한변호사협회 도산변호사회 부회장인 박시형 법무법인 선경 대표는 31일 “젊은 직장인과 무직자의 회생 신청이 늘었다”며 “원인을 캐보면 코인이나 주식 빚으로 회생을 문의하러 온 사람들이 심할 때는 상담 건수의 80%를 차지할 정도”라고 전했다. 네이버 카페 ‘신용회복위원회 공식’에서 회생 관련 문의 글은 2020년 이후 138건으로 2017~2019년 19건에 비해 약 일곱 배로 늘어났다.

회생 신청 급증은 코인·주식 투자 빚은 개인의 책임으로 보고 탕감해주지 않던 과거와 달리 채무 감면 결정을 해주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회생법원 관계자는 “최근 코인·주식 채무자도 구제해 경제 활동원으로 복귀시키는 게 효율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관련 규정을 개정하는 실무 태스크포스(TF)도 구성해 논의 중”이라고 했다. 개인파산·회생 전문가인 김봉규 문앤김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도박빚을 진 사람도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등의 교육확인서를 제출하고 채무를 비교적 많이 갚는 변제계획안을 제출하면 회생 인가 결정을 내려주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회생 막을 명분 없다”

채무 면제의 문턱이 낮아진 탓에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금융회사 등 채권자는 법원의 변제계획안에 관여할 여지가 거의 없고 일방적으로 손실을 보게 된다. 반면 채무자는 최근 50% 안팎까지 채무금을 탕감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커뮤니티에서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 등 채무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저강도 채무탈출’ 수단보다 유독 ‘개인회생’ 신청을 권하는 글이 넘쳐나는 까닭이다. 디씨인사이드 주식, 해외선물 갤러리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채무를 탕감해주고 상환 기간을 연장해주는 개인 워크아웃은 신청하지 않으면 인생의 손해’ ‘위원회 이용이 어려워지면 회생하면 그만’ 등의 글이 수시로 올라온다. 박시형 변호사는 “채무초과 상태가 임박한 시점에서 고의로 대출을 더 받아 투자하고선 회생·파산을 신청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고 전했다.

로펌과 개인 변호사들이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등을 통해 ‘테라·루나, 비트코인 회생도 전문가 하기 나름’ 같은 문구를 내세우는 등 경쟁적으로 마케팅에 나선 것도 이 같은 분위기에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인 회생의 목적이 ‘빚으로 생계 위협을 받는 채무자의 구제’인 까닭에 신청 자체를 막을 순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기 때문에 손실을 분담해야 한다는 논리다. 한 법률 전문가는 “채무자 중에는 앞으로 수십 년 일할 2030세대 투자자도 많다”며 “극단적인 투기꾼이 아닌 한 회생을 불허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설명했다.

이소현 기자 y2eon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