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2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신(新)기업가정신 선포식에서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2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신(新)기업가정신 선포식에서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태원 SK 회장이 직접 챙기는 그룹 차원의 전략회의 확대경영회의가 3주 앞으로 다가오자 각 계열사들이 포트폴리오 ‘갈아엎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탄소중립에 골몰하는 정유, 화학 계열사들이 원전, 반도체 기판, 청록수소 등 신사업 발굴에 열을 올리고 있다.

“SK이노, 8월경 테라파워 지분투자”

31일 SK에 따르면 올해 확대경영회의는 다음달 21일 개최될 예정이다. 매년 6월 열리는 확대경영회의는 CEO(최고경영자) 세미나(매년 10월)와 함께 SK 그룹차원에서 개최되는 ‘투 톱’ 정례회의다. 그간 최태원 회장이 한 번도 빠짐없이 참석한 회의로, 최 회장은 각 계열사 CEO들과 한 자리에 모여 하반기 경영전략을 점검하게 된다. 올해는 최 회장이 지난해 10월 CEO 세미나서 핵심 키워드로 제시한 ‘빅 립(더 큰 성과)’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미션을 제시하고, CEO들은 신사업 관련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평소 최 회장이 강조해 온 ‘딥 체인지(근본적 변화)’ 우등생으로 뽑히기 위해 각 계열사들은 체질 개선에 여념이 없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18일 SK㈜와 함께 원전업계 혁신 기업으로 꼽히는 미국 테라파워와 소형모듈원자로(SMR) 사업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원전사업 본격 진출을 선언했다. 정유·화학사 이후 SK이노베이션의 정체성 및 미래 원동력에 대한 고민이 이번 MOU 체결의 배경이었다는 설명이다.
지난 17일 장동현 SK㈜ 부회장(왼쪽)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오른쪽)이 크리스 르베크 미국 테라파워 최고경영자(CEO)와 포괄적 사업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SK그룹 제공
지난 17일 장동현 SK㈜ 부회장(왼쪽)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오른쪽)이 크리스 르베크 미국 테라파워 최고경영자(CEO)와 포괄적 사업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SK그룹 제공
SK이노베이션은 궁극적으로 탈탄소 에너지기업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금은 정유 사업에서 전체 매출의 70% 가량을 벌어들이고 있지만 앞으로는 시설 유지·보수를 제외한 신규 투자는 전면 중단할 계획이다. 대신 2026년까지 친환경 사업 비중을 현재 30% 수준에서 70%까지 늘리고 자회사 지분매각 등을 통해 신사업 투자 재원을 마련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의 SMR 사업은 테라파워 지분투자 식으로 진행될 것”이라며 “계약 규모 등 구체적인 사항은 8~9월경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또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월 국내에 처음 선보인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을 연내 한 곳 더 설치할 예정이다.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이란 연료전지와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해 전기를 직접 생산하는 주유소를 뜻한다.

2차전지·반도체·수소에 집중

2차전지 소재 분야를 신 성장동력으로 꼽은 SKC는 필름 사업을 매각해 투자금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필름 사업은 지난 45년간 SKC를 성장시켜 온 뿌리 사업이다. 애초에 SKC가 부상하게 된 배경도 국내 최초로 비디오테이프에 사용되는 페트(PET) 필름을 개발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회사 내부에서 “필름 사업은 결국 플라스틱 사업이기 때문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측면에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의견이 모아졌고, 현재 사업 매각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매각가는 1조원~1조5000억원 가량이 거론된다.

SKC는 이 매각 자금으로 전기차 2차전지 핵심소재인 동박, 그리고 반도체 글라스 기판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올해 안에 미국 내 동박공장 부지를 정하고 2025년까지 20만t을 생산하는 것이 목표다. 반도체 글라스 기판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인텔, AMD 등으로부터 품질 테스트를 진행했고 공급 가능성을 인증받았다는 설명이다. 글라스 기판은 반도체 패키징 분야에서 게임 체인저로 꼽히는 차세대 소재다. 글라스 기판을 적용하면 패키지 두께와 전력 사용량이 절반으로 준다는 장점이 있다.

SK그룹의 에너지 계열사 SK E&S는 수소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 중이다. 특히 블루수소와 그린수소의 중간단계인 청록수소의 사업성을 최근 면밀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청록수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카본블랙(친환경 고체탄소)은 타이어나 2차전지용 인조흑연, 제철용 코크스 등의 원료로 쓸 수 있다. 최근 회사 고위임원들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청록수소 상업화 공정을 갖춘 미국 수소기업 모놀리스를 방문한 것도 이 때문이란 관측이 나온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