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5공 남산의 부장들 1, 2'…흑역사 정치공작 해부
남산의 안기부로 조명한 전두환 '철권통치' 8년
우리 정치는 안기부(국정원의 전신)의 음습한 역사적 그늘에 맞닿아 있다.

그 전신인 중앙정보부는 한때 정치 공작과 정치자금 모금, 선거 조작, 이권 개입, 도청, 미행, 납치, 고문, 밀수, 암살 등을 일삼았다.

제5공화국(1980~1988)의 주역인 전두환도 1980년 정보부장 자리에 올라 '중앙정보부'를 '국가안전기획부'로 바꾸고 법도 고쳤지만, 밀수·암살만 빼고는 1970년대의 정보부를 그대로 답습했다.

이는 '보통사람의 시대'를 내건 6공화국 노태우 정권에 들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992년에 박정희 시대(제3공화국과 제4공화국) 18년의 정보부장 10명을 다룬 열전 '남산의 부장들'을 펴냈던 김충식 가천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가 5공화국 전두환 시대의 안기부를 파헤친 '5공 남산의 부장들'을 새롭게 출간했다.

이번 신간은 '권력, 그 치명적 유혹', '권력과 함께 춤을'이 부제인 두 권으로 구성됐다.

5공 당시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였던 저자는 '중공 폭격기' 특종 보도를 빌미로 악명의 남산 지하실에서 3박 4일 동안 혹독한 고문을 당해 1986년 미국 국무부의 인권보고서에 실린 바 있다.

책은 5공의 기원이 된 1979년 12·12 쿠데타에서 시작해 전두환, 유학성, 노신영, 장세동, 안무혁으로 이어지는 5명의 남산 역사를 탐색한다.

남산의 안기부로 조명한 전두환 '철권통치' 8년
12·12 군사반란으로 '수사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황영시 일당은 정승화 계엄사령관(육군참모총장)이 박정희를 암살한 김재규와 공모(내란 방조)했다고 몰아세우며 군권을 일거에 거머쥐었다.

그 기획과 반란에 앞장선 보안사 대령들은 허화평, 허삼수, 이학봉 등이었다.

이번 책은 5공의 주역으로 군림했던 전두환의 파란만장한 성장 과정도 추적해나간다.

아버지(전상우)가 일제 순사를 절벽 아래로 밀어 버리고 만주로 달아나는 바람에 만주에서 소학교를 다니다 대구로 돌아온 그가 산비탈 무허가 움막집에서 살면서 굶기를 밥 먹듯 하던 시절을 소환한다.

1961년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전두환은 육사 생도들을 동원해 '혁명지지 데모'를 유도했고, 그 공로로 중앙정보부 인사과장이 돼 출세 가도를 내달리며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의 회장이 됐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하던 해인 1979년 3월 소장 전두환은 3성 장군 자리인 국군보안사령관에 오르면서 5공 대통령의 초석을 다졌다.

다음은 음습했던 5공 시대가 남긴 일화 중 하나.

"1980년 김대중을 처형하려던 전두환 신군부는 카터 행정부의 반대에 가로막혔다.

11월 4일 대통령선거에서 보수파 레이건이 카터를 누르고 당선되자 청와대의 두 허 대령(허화평·허삼수) 등은 책상을 두드리며 "이제 죽여도 된다!"라고 환호작약했다.

이런 정보에 놀란 주한대사 글라이스틴은 미국으로 날아가 DJ 구명에 나서고, 레이건의 안보보좌관 앨런이 동조한다.

종국에는 유병현 합참의장, 정호용 특전사령관이 전두환 특사로 워싱턴에 날아가, '김대중 처형 포기'를 약속하고 그 대가로 레이건-전두환 회담을 성사시켰다.

"
저자는 이런 흑역사가 군부정권이 끝나고 문민정부 시대가 돼서도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김영삼 정권 때부터 박근혜 정권 때까지 정치자금 세탁, 도청과 감청, 여론 조작, 특수활동비 상납 등으로 줄줄이 법적 단죄를 받아왔다는 것이다.

남산의 안기부로 조명한 전두환 '철권통치' 8년
이런 악순환의 끈을 끊자는 취지에서 저자가 소환한 시가 정호승 시인의 '인수봉'이다.

저자는 "사람들은 사랑할 때 사랑을 모른다 / 사랑이 다 끝난 뒤에서야 문득 / 인수봉을 바라본다"를 '인수봉'의 구절을 "사람들은 자리에 있을 때 권력을 모른다 / 권력이 다 끝날 때에야 문득 / 정상(頂上)을 되돌아본다"로 환치한다.

그러면서 멀쩡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권력은 영리한 지식인도, 힘센 장사도 한낱 부나방으로 만들어버린다며 인간 존재, 그리고 권력과 '인간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해보자고 제안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과 10월에 세상을 떠났다.

블루엘리펀트. 각권 344쪽. 각권 1만9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