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민 서울대 교수, '피의사실 공표' 둘러싼 경찰-언론 관계 변화 분석
기준 없는 피의사실 공표죄에 경찰 위축…"권력자만 이득"
문재인 정부에서 피의사실 공표죄가 논란이 된 이후 언론과 수사기관 관계에 변화가 생겼고 이로 인해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23일 학계에 따르면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등은 학내 연구소의 학술지 '언론정보연구'에 '피의사실을 둘러싼 경찰과 언론의 상호작용'이란 논문을 실었다.

연구진은 지난 2019년 검찰이 울산지방경찰청의 '기소 전 보도자료 배포'를 피의사실 공표라며 담당 경찰관을 수사한 것이 피의사실 공개 관행에 변화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당시 울산경찰청은 약사 면허증을 위조해 약국을 돌며 환자에게 약을 지어준 남성을 구속했다며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를 두고 검찰이 형법상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한다며 수사에 나서자 검찰과 경찰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정치권에서도 검찰이 사실상 사문화한 법 조항을 들어 국민의 알권리를 통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검찰이 해당 경찰관을 기소유예하면서 사안은 마무리됐다.

연구진은 이 사건 이후 언론과 경찰의 상호 관계가 변화하며 몇 가지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우선 수사 기관이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안에서도 '피의사실 공표'를 명분으로 소극적 언론 대응을 하면서, 오히려 비공식적인 정보 제공 루트가 활성화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봤다.

A 경위는 실제 연구진에 "언론사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정보를 알아 오면 마지못해 대응하는 정도지, 먼저 자료를 배포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논문은 피의사실 공표죄가 권력자들의 방어 수단으로 쓰인다는 점도 짚었다.

연구에 참여한 B 기자는 "피의사실 공표죄로 누가 가장 이득을 봤는지 생각해보면 정치권 사람들"이라며 "경찰들이 자신의 승진과 관계있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이나 그들의 자녀 사건에선 절대 정보를 안 알려준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아울러 일선 경찰들의 경우 '언론과의 거리두기' 상황이 달갑지만, 홍보 채널을 맡은 담당 경찰은 업무 과중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언론 보도 관리의 필요성을 적게 느끼는 일선 경찰들과 언론의 영향력에 민감한 지휘부 간 의견 충돌도 발생한다고 한다.

연구진은 이 같은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선 명확하고 구체적인 언론 대응 기준을 만들어 일관성 있게 정보를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