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는 도구를 사용해 먹이를 낚는다.
다른 동물들 또한 자기 나름의 무엇인가를 만들어 이용한다.
그런데도 인류가 지구를 지배할 수 있게 된 비결은 뭘까?
독일의 과학저술가 슈테판 클라인은 그 수수께끼의 열쇠는 '창조적 사고'라고 설파한다.
이와 함께 '커다란' 뇌'보다 '집단적 뇌'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덧붙인다.
그의 신간 '창조적 사고의 놀라운 역사'는 인간의 창조적 사고가 어떻게 발전해왔고 석기시대부터 인공지능 시대까지 인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탐색한다.
330만 년 전의 인류가 창조적 사고를 할 수 있었음을 증명한 로메크위의 석기 유적지부터 15세기의 구텐베르크의 인쇄소를 거쳐 지금의 알파고로 이어지는 새로운 지능의 탄생까지 그 창조적 궤적을 좇으며 인간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고 진화했는지 들여다본다.
인류의 지구 지배는 현생인류에 이르러 가능해졌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의미의 호모사피엔스가 등장하고서야 창조적 사고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고고학자 소니아 아르망과 함께 한 탐사를 통해 이런 편견을 깨뜨린다.
지식과 지식, 뇌와 뇌가 연결되는 거대한 집단의 뇌를 통해 창조적 사고가 이뤄졌고, 이는 결국 오늘날과 같은 인류 발전을 이끌어온 원대한 힘이 됐다.
창조적 사고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으로, 이 또한 집단적 창조성이 빚어낸 발명품이었다.
도시마다 인쇄소가 생기면서 정보가 정확히 복제되며 폭발적으로 확산했다.
물리적 장소나 거리가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는 가운데 창조적 사고는 지구화했다.
전 세계적으로 뇌가 연결되는 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저자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도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에 빚지고 있다고 말한다.
항해를 떠날 때 그의 손에는 천문학자이자 출판업자인 레기오문타누스가 펴낸 '천체위치추산표'가 들려 있었고, 이 수단에 힘입어 미지의 세계로 당당히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이처럼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는 비결을 '탐구적 창조성'이라고 한다.
오늘날 인간이 발휘하는 창조성 대부분이 이런 탐구적 창조성에 힘입은 것이다.
이와 관련해 영국의 수학자이자 생물학자인 제이콥 브로노프스키는 인류가 지구의 지배자가 되는 과정이 단순히 지능의 승리가 아니라 상상력의 승리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탐구적 창조성도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위기를 맞게 됐다.
이전의 컴퓨터 역시 미증유의 연산 능력으로 인간보다 더 넓은 가능성의 범위를 탐색할 수 있었지만, 이는 인간에게 넘겨받은 선판단을 근거로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반면에 지금의 인공지능은 규칙을 입력하면 스스로 게임 전략을 개발하며 자기만의 선판단을 내린다.
이처럼 기계가 인간보다 빠르게 해결책을 모색하는 세상에서 인간 지성은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저자는 지금껏 창조적 사고를 가능하게 했던 교류·협력과 더불어 무엇이든 호기심을 갖고 바라보는 어린아이와 같은 삶의 자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창조성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인류 발전의 실체인 '창조적 사고'와 '집단적 뇌'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거다.
책은 '경이로움의 시작', '상징, 새로운 생각의 탄생', '뇌가 연결되는 시대', '창조적 사고의 미래' 등 모두 4부로 구성돼 있다.
유영미 옮김. 284쪽. 1만6천800원.
/연합뉴스